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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상벌점제 폐지" … 학교선 "교육감, 현실 너무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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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재정(사진) 경기도교육감이 관내 초·중·고교의 ‘상벌점제’ 폐지를 추진하면서 일선 교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오전 9시 등교’ 논란으로 학교 현장이 어수선한 가운데 상벌점제까지 없애겠다고 하자 교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체벌을 금지한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유일한 학생 통제수단인 상벌점제가 폐지되면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염려에서다. 교육계 안팎에선 오전 9시 등교와 함께 상벌점제의 교육적 효과를 놓고 때 아닌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1일 상벌점제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건강한 성장, 인권 친화적 생활교육 추진계획’ 공문을 각 학교에 발송했다. 이 교육감은 “상벌점제 폐지는 지도와 훈육 중심의 생활지도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활교육 방안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대안으로 ▶학생 스스로 학교생활협약을 제정·운영하고 ▶사제(師弟) 간 경어 사용 문화 정착 ▶학생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준수하고 점검하는 학생자치법정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교육감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장은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상벌점제가 최선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폐지는 교실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교사도 “행동을 점수로 매겨 평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상벌점제 말고 학생을 선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상벌점제는 징계와 처벌 위주의 학생지도를 탈피하기 위해 2000년대 이후 일부 학교를 중심으로 도입됐다. 2009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돼 경기도의 경우 초등학교 18.24%, 중학교 85.2%, 고등학교 82.3%가 상벌점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상벌점제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선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상벌점제는 생활지도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인성교육의 한 방편”이라며 “학생들은 상벌을 통해 권리와 책임, 옳고 그름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고 선행보다 학교 홍보활동에 대한 ‘상점’이 더 높아 비교육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기도 A중학교의 상벌점 내역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학생의 등·하교를 돕거나 지속적으로 청소를 열심히 하면 상점 1점을 준다. 반면 대통령상(7점)과 장관상(5점)처럼 외부 상을 받거나 언론에 모범사례로 알려지면 5점을 받는다. 당초 목적인 ‘생활지도’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하병수 대변인은 “학칙을 어겼다고 벌점을 주고 벌점을 메우기 위해 봉사나 심부름을 시키는 게 얼마나 교육적 효과가 있느냐”며 “적용 기준도 교사마다 달라 학생 입장에선 일관성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 의정부여중은 25일부터 등교시간을 오전 9시로 변경하기로 했다. 경기도교육청의 ‘오전 9시 등교’ 정책을 실천하는 첫 학교다. 경기도교육청은 “‘오전 9시 등교’ 시행 학교가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선 갑작스러운 ‘오전 9시 등교’ 정책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국교총 안양옥 회장은 “학교장 재량인 등교시간을 교육청 차원에서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학교 현실과 학부모들의 바람은 외면한 채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혼란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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