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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의 꿈으로 졸음도 잊는다|서울종로 직업청소년 야간학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봄이라 지만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초저녁.
귀가 길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때 비로소 활기를 띠는 근로청소년들의 배움터 종로 직업청소년학교(서울 운미동60).
교복도 따로 없고 나이도 일정치 않은 불 우 청소년들이 뒤늦은 진학의 꿈을 키우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모여든다.
고달프기는 하지만 남다른 향학열에 불타는 눈망울은 전등 빛보다 더 초롱초롱하다.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교사자격증이 없는 대학생들. 보수라곤 한푼 없이 교단에 섰지만 가르치는 열의만은 어느 정규학교교사 못지 않다.
학생 수는 모두 81명(중1과정 57명, 중3과정 24명) .학습지도는 고려대생(운화회 회원)19명이 맡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회사사환이나 공원들. 개중에는 구두닦이나 신문배달소년도 있고 김포·안양 등지에서 농사짓는 청년도 있다.
12살 짜리 소년에서 30살의 노총각에 이르기까지 학생층도 다양하지만 여학생이 70%로 남학생보다 두드러지게 많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사이는 사뭇 형제나 남매 같다.
학생들 중 가장 어린 임일몽 군(12·서울 원서동135의47)은『선생님들이 형님처럼 느껴져 더욱 애착을 갖고 야학에 다닌다』고 자랑이다.
이곳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국어·영어·수학 등 중학 전 교과과목. 하루 4시간 수업으로 2년 6학기(1학기 4개월) 교육과정을 마칠 때면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붙는다.
야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 주는 곳만이 아니다. 교양강좌와 개별상담을 통해 자칫 비뚤어지기 쉬운 불우 청소년의 선도에 힘쓰고 있다.
대학입학 후 줄곧 이들과 생활을 같이 해 온 민경선 군(20·화학과2년)은『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다 보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털어놨다.
교사들은 강의준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학교공부나 행사, 또는「미팅」이 다해서 미처 수업준비를 하지 않고 강단에 섰다가 이를 눈치챈 학생들 때문에 머쓱해지기 일쑤라는 교무주임 정종억 군(21·생물학과 2년)의 말에서 학생들의 향학열을 알아볼 수 있다.
지난해 8윌 중3과정 16명중 12명이 고입검정고시에 응시, 9명이 합격했을 땐 교사들과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기쁨을 나눴다.
올해 서울 풍문여고에 진학한 이태숙 양(18)은『친구들보다 뒤늦게나마 상급학교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야학 선생님들의 덕택』이라고 고마워했다.
교사들은 자칫 소외되기 쉬운 이들의 소양을 높이려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매년「문학의 밤」·「크리스마스」잔치·야유회 그리고 체육대회 등을 열어 학생들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단체생활을 익히도록 힘쓴다.
현재 이곳 야학은 종로 청소년선도위원회(위원장 윤창호)가 운영에 필요한 모든 후원을 해주고 있지만, 이들에겐 어려움도 없진 않다. 우선 교재(교과서)도 그렇거니와 통학권발급의 혜택도 없다.
『내가 배운 것을 좀더 밝은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배운 사람의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어요. 대학생들이 큰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까운 이웃부터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자세가 더욱 뜻깊은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영어교사 김영미 양(20·식품영양학과 2년) 은 이 같은 마음가짐이 10기의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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