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5시부터 야채시장·조기회장·해장국집 돌아|4푼곗돈 4백만원 빌어온지 이틀만에 간곳없어|무소속 후보<충청지방·전의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벽3시반 자명종이 울린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면실로 간다. 수많은 유권자들과의 악수로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손을 찬물에 담가 찜질을 한다.
돈이 걱정된다. 그저께 부인이 친구의 곗돈이라며 4푼이자로 빌어온 4백만원은 벌써 간곳이 없다. 연설원고를 들춰보며 어제까지의 반응과 오늘 연설할 지역을 감안해 수정을 가한다.
그러다보니 새벽4시40분.
부인이 어느새 경옥고와「비타민」, 그리고 친정에서 보내온 인삼가루물을 받쳐들고 온다.『돈 좀 어떻게 마련해 보라』고 부인에게 이르고 새벽5시에 집이 아닌 숙소를 나선다.「랜턴」하나만을 손에 들고 우선 야채시장에 들어선다. 아주머니 열댓명,「리어카」꾼 여닐곱명이 벌써 바쁘다.
『수고하십니다. ○○○입니다. 배추가 좋은데요.」일판에 끼어들어 덥석 손을 잡는다. 흙이 묻은 손이면 더 좋다.『기호는×번입니다』
다음은 조기축구를 하는 ××학교 운동장 차례. 조기축구「멤버」가 40명쯤 된다.
『늦게서야 찾아뵈어 죄송합니다』넓죽 큰절을 한다. 박수가 터지며 안면있는 사람들이 쫓아와 일으켜 세운다.
차를 불러 해장「코피」집으로 가면 등산을 마친 60대 노인 2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진작 찾아뵈어야 하는데….』또 한번 「시멘트」바닥 위에서 큰절을 올린다.
『저 사람됐어』라는 말을 귓가로 흘리며 돈을 치러주고 나온다. 해장국집도 빼놀수 없는 곳. 그러나 수시로 바꿔 다녀야된다.『우연히 만나 해장국값 8백원 내줬다고 선거법에 걸리느냐』며 만류의 손을 뿌리친다.
도합 1만 2천원으로 꽤많은일을 한 셈이다. 7시20분. 사무실로 오는 도중 정원을 초과해 중학생 5명을 학교까지 태워다주느라 10분정도 지체한다.
『×면책이 부진하다』『모후보가 어젯밤 ○를 다녀갔다』『△룰 만나면 70표는 틀림없다』는 등 한이 없다. 핵심참모 4명과 대책회의를 끝낸 뒤 부인이 가져온 돈 20만원씩을 나눠준다.
『내일은 좀 풀릴테니 오늘은 이것으로 버텨보자』고 달래면서. 사무실 담당을 불러「코피」·자장면 값으로 10만원을 준다.
합동연설장에는 30∼40분전에 도착, 문앞에서 상대의 운동원까지 가리지 않고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연설순서는 4번째. 후보석에 앉아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3번 후보의 연설중간까지는 청중속을 돌며 인사를 한다.
일장연설을 한 다음 다시 연설장을 한바퀴 돌고 나온다.
마침 오늘은 결혼식 주례가 없어 취로사업장엘 들러 권하는 막걸리를 대여섯잔 마신다.
이곳 유지라는 사람과의 점심은 오징어볶음과 소주2병, 그리고 「우동」으로 때운다.
하오연설장으로 가면서 서너가구의 자연부락도 들르고, 길가는 아낙네 한명을 보고도 차에서 내려, 일일이 인사를 한다.
하오연설을 마친 것은 5시. 그때부터 밤10시까지 2개면의 15개 부락을 들른다.
군간의 지역감정 때문에 숙소를 다른 군으로 옮긴다. 서울친구에게 현금 5백만원을 구해달라는 전화를 하고 누우니 12시 10분. 물젖은 솜처럼 피곤하지만 상대후보의 얼굴과 표가 어른거려 바로 잠이 안온다. <김현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