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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학교에 학생3만 명 18년만에「학원왕국」세워|구속된 백인엽씨와「선인학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학원왕국」-. 불과 18년만에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14개 학교를 거느리게 된 인천의 선인학원. 학원이사장이자 설립자인 백인엽씨(59)의 구속사건을 계기로 총재산 1천억 원으로 평가되는 선인학원의 실상을 알아본다.
백씨가 육군중장으로 예편한 뒤 육영사업에 손을 댄 것은 63년. 교지1천 평(인천시 도화동235)으로 출발한 선인학원은 현재 교지 15만2천 평에 수익용 토지 43만평, 14개 학교(유치원 1, 초교 1, 중학 3, 고교 7, 전문대 1, 대학 1)에 연건평 6만1천 평, 체육시설 13만여 평, 교직원 1천여 명, 재학생수 3만여 명이라는「학원왕국」으로 자랐다. 특히 백씨가 외국의 유명 실내체육관을 두루 살핀 뒤 직접 설계했다는 실내체육관은 객석 3만석으로 잠실 실내체육관의 2배이자 동양 최대규모다.
18년이란 짧은 기간에 그만한 일을 해낸 것은 누가 뭐라 해도 6·25때 세운 그의 전공 못지 않게 놀랍고 장한 일임엔 틀림이 없다.
이 같은 대규모 학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물의를 빚어 왔다는 사실도 알려진 일이다. 인천대교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교건물(4만3천8백97평)이 준공검사도 받지 않은 무허가건물이었음이 이번 검찰수사결과 드러났다.
또 교지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현지주민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 엄청난 학교시절 투자를 주로 학생들의 부담에 의존함에 따라 학부모들의 불평을 사기도 했다.
이 바람에 그 동안 관계기관에는 선인학원의 비위를 고발하는 투서나 진정이 끊이지 않았다.
선인학원이 자리잡은 인천시 도미동235일대는 학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몇 집 안 되는 화교 촌과 그들의 묘지, 그리고 허술한 농가가 띄엄띄엄 있던 야산지대.
선인학원은 해마다 학교건물을 짓고 교지를 확장하면서 이들에게 대가로 부지를 매입하지 않고『「불도저」로 흙더미를 밀어 집 주위를 지붕보다 높게 만들어 헐값으로 사들이려 한다』는 진정서도 있었다.
73년에는 이 같은 말썽이 청와대에까지 알려져 문교부가 직접 중재에 나섰으나 백인엽씨가 주장을 굽히지 않아 손위 가족을 통해 무마한 일도 있다.
문교부가 지난 1월 28∼2월 10일까지 사학감사를 할 때도 백인엽씨는 감사「팀」에 인사만 한 뒤 자리를 비워 자료요구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에 나섰던 한 관계자는 감사「팀」을 위한 직통전화 등 편의제공을 처음에는 일체 하지 않았고 경리장부 제출은 끝까지 불응, 감독권 행사에 정면 도전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 번 수사에서「이전의 비위는 일체를 불문한다」고 했던 80년 8월 19일 국보위의 사학운영쇄신 기본시책 발표이전의 비위까지 손댄 것은 선인학원에 운영쇄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차 감독기관인 경기도교위는 73년 문교부의 특별감사가 있기 전까지 장학사마저 제대로 출입시키지 못할 정도로 선인학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정원을 초과 모집하거나 부정입학을 시키거나 무자격교사를 채용해도 누구 한사람 간섭할 수가 없었다.
문자그대로「선인왕국」.항상 작업복바지에「점퍼」차림으로 농구화를 신은 채 늘 주위사람들로부터『장군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고 방대한「캠퍼스」를 번호 판 없는「지프로 누비는 백씨는 문교부가 감독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했던 전 경기도교위 학무국장 김 모씨(65)를 이사로 초빙했고, 지난해엔 역시 도 교위 학무국장 박 모씨를 학사책임자로「스카우트」하기까지 했다.
검찰수사 결과 선인학원은 인천공전 등에서 1천여 명의 정원의 학생을 모집하고 이들로부터 받은 61억 원의 찬조금 중 7억 여 원을 학교의 교육목적 외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원 외 입학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말썽이 돼 문교부로부터 시정지시를 받았으나 학원 측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고 문교부에 면직 보고한 학장을 계속 근무토록 하는 등 직접 감독관청의「지도감사」를 무시해 왔다.
『학생은 이 나라 장래의 기둥이니 대지를 품고 일의 전심 학생의 본분을 다하라. 학생은 이 나라 주인공이니 학생사랑하기를 내 몸 아끼듯 하라』 -선인학원 설립자 백인엽씨의 건학 정신.
그의 웅대한 꿈은 실현과정의 무리에서 좌절을 겪고 있다.
백씨는 검찰에서『처음 학교를 시작할 때에는 자금이 달려 애를 먹었다』고 진술했으나 현재 백씨는 3억 원 짜리 저택 외에 서울 충무로2가에 4억 원 짜리 2층 점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가 횡령한 1백80여 차례 7억5천만 원은 최소단위가 1백 만원 이상.
그 중에는 임원들의 생활비보조 외에도▲80년 5월 백씨의 모친상 경비 3천만 원▲79년 말 기관장 선물 값 2천5백 만원▲임원자녀 결혼 축의금 2백 만원▲이사M씨 아들 유학 비 보조 4백 만원▲학장주택 구입 비 보조 1천만 원 등 이 포함돼 백씨의 씀씀이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백씨의 구속영장이 신청되던 17일 대검특수 부는 초비상. 백씨의 범증을 확보한 검찰은 이날하오 허형구 검찰총장이 고위층의 결심을 받고 나온 뒤 바로 영장을 작성, 이날 숙직판사에게 신청키로 결정.
밤10시12분 영장과 기록을 든 수사관은 취재진을 피해 외부로 나가는 체하다 되들아 숙직판사 실로 들어갔다.
기록을 담당판사에게 제출한 뒤 법원숙직 실에는 검찰로부터 영장이 발부됐는지를 확인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기록을 검토한 김목민 판사가 밤10시55분 영장에 서명하자 담당수사관은 또 한번 법원구내를 한바퀴 돌아 검찰청사로 직행했고 수위들은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았다.
밤11시쯤 영장발부가 확인되자 김성기 특수부장이 검찰청에 나와 구속 후의 조치를 직접 지시했고 11시20분쯤 참고인으로 소환됐던 선인학원이사 M·K씨, 학장K씨 등 이 풀려나「카메라」세례를 받았다.
사진을 찍자 이사M씨는 태연했으나 K씨는「코트」를 벗어 머리위로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들의 손에는 방금 검찰청을 나설 때 받아 쥔 주민등록중이 승용차 안에서까지 그대로 들려 있어 얼마나 초조했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연행 6일만에 구속된 백씨는 미리 예상했던 듯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회색「혼스펀」상의에 흐린 밤색바지를 입고 흰Y「셔츠」에「넥타이」를 매지 않은 학교건축공사 때처럼 여전히 간편한「케쥬얼·슈즈」를 신고 있었다. 수갑을 채우지 않아서인지 행동에는 여유가 있었으나 얼굴에는 검은 반점이 많았고 무척 피로한 기색이었다.
상오 8시18분 수사관 2명과 함께 이국헌 부장검사 실을 나선 백씨는『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멍하게 앞만 바라보며 묵묵부답.
백씨가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8일 상오 선인학원산하 각급 학교 학생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모두 정상수업을 받고 있었다. 상오11시쯤 늦게 등교하던 이 모 군(20·공학부 2년)은『집에서「라디오」를 통해「뉴스」를 들었으나 벌써 며칠 전부터「백 장군」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별로 놀라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반직원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18일 낮까지도 백씨의 구속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비서실 직원들만이 친지들로부터 걸려 오는 문의전화에 대답하는 등 학교분위기는 평상시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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