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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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유세장의 품경은 그야말로 만화경이다. 연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연사가 있는가 하면 독약을 들고 나온 후보도 있었다. 어떤 여성 후보는 손가락을 물어 혈서를 쓰기도 했다.
이런 선거풍을 보며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의 정치풍토는 언제나 좀 세련이 될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 기술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전에 국민을 보는 자세의 문제다.
이웃 일본도 형편은 우리와 비슷한 모양이다. 언젠가 한 신문의「칼럼」은 정색을 하고 「정치인 검정시험」제도를 제의한 일이 있었다. 율사나 의사도 자격시험을 보는 데 국사를 다루는 정치인이 예외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 검정시험의 경우는 구술시험으로 대신하고, 그 시험위원은 신문기자가 제격이라고 했다.
물론 선거는 그 이상가는 가혹한 시험이긴 하지만, 그래도 예비시험의 과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인의 자질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스피치」다. 미국의 철학자「에머슨」도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영웅은 물론 성자·신까지도 명연설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의 명수라는 얘기는 아니다.
『무슨말을 하든 내일·내주·내월·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져라. 그러나 후일 예언이 적중하지 않았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자신이 명연술가인「처칠」이 정치인의「스피치」를 두고 한말이다. 「처칠」 은 특히 2차대전 중 명연설을 통해 영국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웅변가로도 명성이 높던 고대「로마」의「키케로」는 젊은 시절에 연술하는 법을 일부러 배웠다. 처음엔 비극배우에게서, 그 다음엔 희극배우로부터. 그의 웅변이 섬세하고, 인상적이고, 중용적인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우는 말하는 연기보다는 역시 그 속의 진실이 더욱 중요하다.
말이 헤픈 사람을 『가장 불행한 파산자』에 비유한 사람이 있었다.
생각의 수입보다 말의 지출이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의 선거 유세장에는 그런 파산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F·루스벨트 미국대통령은 그의 아들에게 연설의 요령을 단 세마디로 가르쳐 주었다. 『비·신시어』(진지하게),『비·브리프』(짧게하라),『비·시티드』(그만앉아라).
그러나 이것은 요령일뿐, 감명은 아니다. 사실 말을 잘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천번의 말을 하는 편이 천명에게 한번 말하는 것 보다 훨씬 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거는 어느덧 종반전에 접어들고있다. 후보들은 이제 남은 시간에 유권자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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