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크송 샴페인과 돼지 족발의 하모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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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만으로 전식에서 후식까지 전체를 서비스하는 경우는 드물다. 샴페인은 식 전주로, 화이트는 전식에, 그리고 메인 요리에는 레드 와인을 마시는 것이 통상적인 순서다. 필자도 이런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이 깨진 것은 프랑스의 샴페인 지역을 여행하면서 한 샴페인 하우스의 저녁 초대를 받고나서부터다.

샴페인 하우스들은 격식과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샴페인 자체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격에 맞는 수준 높은 테이블과 식사를 제공한다. 유명한 성에서 열린 그날 행사에는 미국 각 주에서 그 회사 샴페인을 가장 많이 판 샵 오너 20여 명이 초대됐다. 드레스 코드는 정장이었다.

테이블에 앉기 전 식전주부터 샴페인이 시작됐다. 호스트가 정해주는 자리에 앉은 다음 전식으로 랑구스틴(작은 바다가재)요리가 나왔고 조금 진한 샴페인이 나왔다. 아주 잘 어울렸다. 이어 셰프가 큼지막한 생선을 통째로 들고나와 테이블을 돌며 보여주더니 일인용 접시에 담아 내왔다. 와인은 역시 샴페인이었다. 메인 요리로는 샴페인 지방에서 주로 먹는 사슴고기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로제 샴페인이 함께 등장했다. 보통 그랑 크뤼 샴페인과도 잘 어울린다는데 레드 와인을 대신해 로제 샴페인으로 궁합을 맞춘 듯했다.

후식으로 드미 섹(Demi-Sec)이라는 조금 달콤한 샴페인이 대미를 장식했다. 그 후에는 시가와 코냑을 즐기면서 긴 밤을 즐겼다.

필자에게 최고의 감동을 준 샴페인과 음식의 조화는 작은 샴페인 하우스를 취재하면서 이루어졌다. 부티크 샴페인으로 연간 생산량이 35만병(보통 큰 회사는 100만 병 이상 생산한다) 정도인 쟈크송(Jacquesson) 샴페인 하우스를 방문 했을 때다. 오너가 포도밭과 오래 된 지하 셀러를 보여주고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에페르네 마을 중심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이 레스토랑은 1년 전까지 미슐랭 스타였지만 오너 셰프가 괴팍하게 행동해 이듬해 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주인 부부가 주방과 홀을 책임지고 있어 가족 경영이라고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인데, 별은 잃었지만 그 동네에서는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이 곳에서 쟈크송 오너는 “이곳의 돼지 족요리가 우리 샴페인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귀띔했다. 잔뜩 기대를 갖고 작은 앞다리 족을 통째로 요리한 것을 몇 점 발라 먹고 있는데 오너가 테이블로 오더니 “그만 먹으라”며 가져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셰프는 “조금 기다리면 더 좋은 요리를 주겠다”고만 했다.

잠시 후 다른 요리가 나왔다. 돼지족의 부드러운 살과 젤라틴을 발라 라이스 페이퍼에 담아 주머니 모양으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먹음직스럽게 튀긴 것이었다. 뼈를 다 제거해 먹기 편했고 겉면이 파삭한 식감과 담백하고 부드러운 돼지 족의 어울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여기에 효모 향이 기분 좋게 올라오는 쟈크송 729(매년 번호가 바뀐다)를 마시자 샴페인의 묵직하면서도 상쾌한 맛이 일품이었다. 먹고 마시는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분’이 오셨던 것이다. 그날 필자는 한없이 행복했고 아마 눈물도 흘렸는지 모르겠다.

온라인 중앙일보 · 김혁 와인 평론가·포도 플라자 관장 www.kimhyu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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