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의 성패는 교사 자질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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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랫동안의 숙원이었던 유아교육 「붐」이 일어나 요즈음 정부의 각부처가 앞을 다투어 취학 전 아동교육문제를 둘러싸고 열을 올리게 되었으니 10년 묵은 체가 뚫리는 듯한 상쾌 감을 느낀다.
요즈음은 분명히 우리 나라 유아교육사에 찬란한 「페이지」가 쓰여지고 있음을 실감하여 감회가 깊은 한편, 마음 한구석으로는 염려스러운 생각도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나무를 기르려면 10년을 잡고 사람을 기르려면 l백년을 잡으라고 했다. 민족의 먼 장래를 내다보며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려면 계획단계에서부터 보다 구체적이고 면밀한 장 단기 계획이 있어야 하고, 모든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의 진지한 논의 끝에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자고 깨면 깜짝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발표되곤 해서 때때로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도 된다.
유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설을 갖춰 놓아도 교사의 자질이 낮으면 시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반면 시설이 좀 미약해도 교사가 창의적이고 사랑과 기지에 넘쳐 있으면 웬만한 역경은 헤치고 나가면서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이 도서나 실험시설이 큰 역할을 하는 상급학교 교육과는 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며 인격을 형성해 간다. 그들에게는 주위의 사물 중 교재 아닌 것이 없다. 돌도 물도 모래도 풀도 벌레도 모두 교재가 될 수 있고 폐품의 활용 가치도 크다. 선생님만 훌륭하면 l∼2년 사이에도 좋은 학습의 바탕이 형성될 수 있고, 그 바탕은 오래도록 효과를 지속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선생님이야말로 대학에서 만나는 선생님보다 더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어린이는 그 선생님의 이름조차 기억을 못해도 말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교사양성계획이나 그들에 대한 인건비 및 신분보장대책이 없이 유아교육의 「붐」이 일고 시설이 먼저 확충된다는 일은 아무리 보아도 순서가 좀 뒤바뀐 느낌이 있다. 무자격교사들을 일주일간 속성으로 훈련해서 가정부월급만도 못한 급료를 주며 제2세 국민을 거침없이 맡겨버리는 짓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국민학교 교사를 중·고교교사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안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나 한층 내려가서 유아를 위한 교사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제창하고 싶다. 내려간다는 것은 연령적으로 내려가는 것이지 경중의 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일수록 더욱 훌륭한 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 빨리 일반화되었으면 한다.
대학생은 좀 시시한 교수를 만나도 인격이 손상될 염려는 없지만 어리면 어릴수록 그런 위험성은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하는 나머지어린이 교육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정규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부여하고 유치원·어린이집·유아원 중 어느 곳에서 누구를 가르치든 경력을 인정하고 승급의 기회, 포상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래야만 교사의 사기가 올라가서 어린이 지도에 보다 큰 열과 성을 바칠 것이 아니겠는가. 유아를 위한 교사직을 처녀 때 거쳐가는 임시직으로 보아 넘길 것이 아니라 일생을 바칠 수 있는 천직으로 여기고 뛰어들게 하기 위해서는 이 직업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좀 더 베풀어져야 한다. 자기 자녀를 가져본 사람이라야 보다 훌륭한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쉬우므로 이런 의미에서도 처녀만 기용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끝으로 한마디 더 한다면 언젠가는 유아교사들에게도 자격증이 있는 한 정부에서 봉급을 지급하는 날이 와야만 한다고 믿으며 그 날이 빨리 올수록 좋으리라 생각한다. <숙대교수· 아동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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