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본의 탈·오자 의문 풀려|새로 찾아낸 『삼국사기』 끝부분 7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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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75년 사단법인 국학 자료 보존회 (이사장 강주진)가 성암 조병순씨의 고서 박물관 소장 도서 목록에서 발견해낸 고려말기 추정본인 「삼국사기」가 9일 공개됐다. 전체 50권 중 끝부분인 「열전」 7권 1백76「페이지」를 묶은 것이다.
이 책은 한 「페이지」에 9행18자씩 들어있는 목관본으로서 크기와 체재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중종본 (일명 정덕본·중종 7년 1512년·보물 5백25호)과 같다.
그러나 성암본 「삼국사기」는 중종본과 3백여개의 글자가 다르다. 성암본과 중종본을 비교 조사해 본 최병헌 교수 (서울대 국사학) 는 그 동안 중종본의 틀리고 빠진 글자 탓으로 뜻이 안 통했던 귀절들이 쉽게 풀렸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원효의 아들 설총의 성품을 나타낸 대목 중 중종본에는 「생지도대」 (나면서부터 「도대」를 알았다) 의 부분의 해석이 엇갈렸으나 성암본에는 「생지도술」이라고 확실하게 표기돼 있어서 그 동안의 의문을 씻어줬다.
그밖에 성암본 비교 판독에서 얻어진 수학은 신라의 유학자인 강수의 본명이 「자두」 (중종본의 표기)가 아니라 「우두」이며 최치원의 마지막 벼슬이 「서서감의 지사」였음이 밝혀진 것 등이다.
이 책의 존재는 7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래 76년 서울서 개최된 세계 도서관 협회 대회에서도 다시 발표됐었다. 이때도 이 책의 발간 연대가 고려말기일 것이라고 추정됐으나 아직까지 확실한 고증이 없다.
서지 학계에서는 중종 7년에 나온 책보다 앞선 태조본이 발견되지 않아 「성암본」을 고려본이라고 못박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최초 편찬한 당시의 본인 고려본 (1145)과 이후 조선 태조 3년(1394)에 보판한 「태조본」, 중종 7년 (1512)에 또다시 보판한 중종본 (정덕본) 그리고 선조 때 조판한 본 등이 있으나 태조본과 고려본은 멸실 된 것으로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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