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잃어 가는-문경새재 조령원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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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경=엄주혁·최재영 기자】우리 나라 최고의 온돌지로 밝혀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문경새재의 조령원 터를 복원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진지 3년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않고 있어 현장에는 조감도만 덩그렇게 서 있다. 영남과 기호 지방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군사 요충지였던 경북 문경군 문경읍 상초리 문경새재.
조령원은 예부터 한양길에 나선 선비나 나그네의 여각이자 새재 길목을 지키는 병사들의 숙사로 쓰였고 영남과 기호 지방의 특산물을 교환하는 장소로도 이용되던 곳이다.
이 원터가 처음 알려진 것은 76년 당시 박 대통령이 문경새재를 둘러보러 왔을 때 잡초 속에 묻혀 있는 여각의 터를 발견하자 문화재 전문 위원으로 구성된 발굴 조사만을 77년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보냈으며 이어 복원토록 지시했다.
당시 발굴 조사단은 이 조사에서 원터가 문경새재성을 축성하기 전인 신라 중엽이나 고려 초기에 시설된 최고의 것으로 밝혀냈다.
이에 따라 문경군에서는 군비 1백30만원을 들여 고려 온돌지 보호각 (33평) 귀틀집 (이조 온돌지 53평) 대장간 (5평) 누각 (9평) 마방 (8평) 등 옛터에 법식에 맞춰 복원 설계를 마쳤고 원터에 조감도까지 세웠다. 그러나 그 뒤 문화재 관리국에서 복원 건축물에 대한 고증이 미비하다고 했다가 요즘은 우선 순위에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복원 사업을 승인해 주지 않았고 1억7천만원이나 드는 복원비 (78년 당시 추산액)틀 군 예산으로는 충당할 수 없어 조감도만 3년째 방치해두고 있는 실정이다.
원터의 위치는 새재 3개 관문 중 제1관문인 주흘관 (사적 제147호)에서 북쪽으로 제2관문인 조유관을 향해 1.5km쯤 산길을 오르는 도로변.
계립산·주흘산·희양산으로 이어지는 소백 산맥의 깊은 계곡으로 천연 요새지에 위치해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방치해둔 때문에 원터 (구기)는 점차 황폐해져 석벽은 무너져 내려도 어느 누구 한사람 손을 보는 이 없고 반 아름 크기의 넓적한 구들 10여점도 흙과 잡초에 덮여 있다.
또 동쪽 성벽에 이어진 대장간, 북쪽귀의 누각, 서쪽귀의 마굿간은 잔디 둔덕으로 구획돼 있으나 군에서 설치한 표지 패말이 없으면 원터의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 정도로 허물어져 있다.
새재 관리 사무소 직원 김용복씨 (40)는 『원터의 고려 온돌지는 우리 선조가 구들을 이용해 창안한 난방 구조로 한옥 구조의 경형을 찾는 유일한 자료』라며 『사람들의 발길에 원형이 허물어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정부의 복원 지원을 바랐다.
문경읍 상초리 박광희씨 (50)는 『원터 보존은 관광 자원 개발이라는 면에서도 시급한 과제』라면서 『원형 복원을 위한 학문적 고증이 하루 속히 매듭지어져야 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편 문화재 관리국 관계자는 『조령원 터는 정부 지원 문화재 복원·정화 사업의 우선 순위에 들어가지 않아 이제까지 복원을 못했던 것』이라며 『특히 금년부터는 국가 지정 문화재를 우선 보수·정화·보존 관리토록 하고 호국 선현의 현장 시설이나 새로이 조사·발굴해서 복원하는 사업은 지양하도록 문화재 보존 관리 방침이 바뀜에 따라 복원에 대한 지원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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