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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전 일본총리 "위안부 문제 한일 정상회담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0) 전 일본 총리가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0) 일본 전 총리는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일본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고 전 세계에 공표한 국제공약"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공직에 머무를 수 없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행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문제’라는 제목의 기조 발표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을 정식으로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사회당·신당 사키가케당 연립정권의 총리로 재임하던 1995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담화는 일본이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담화가 만들어진 경위와 이 담화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밝혔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일본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하시모토 수상, 오부치 케이조 수상을 비롯한 이후 총리들에게도 모두 계승돼 왔다"며 "고이즈미 정권 때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주변국들이 일본의 입장에 의심을 갖게 된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베 총리는 2006년 처음 총리가 되었을 때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표명했지만, 2012년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이후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거나 '침략이라는 정의에 대해 이것은 학계에서도 국제사회에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해도 좋다'라고 발언해 국제사회에서 호된 비판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그는 "무라야마 담화는 국제공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재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가 무라야마 담화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나선 것은 최근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문제로 한·일 및 중·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시키는 '아베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과 관계가 깊다. 아베 총리는 지난 15일 정부 주최 전몰자 추도식 추도사에서 "우리나라(일본)는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습니다. 국민을 대표하여 깊은 반성과 더불어 희생된 분들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구절을 삭제한 바 있다. 2007년 1차 내각 당시에는 들어가 있던 구절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여성기금의 배경도 설명했다. "총리 재임시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고노(河野) 담화에 나타난 사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책을 찾았다"며 "정부 차원에서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나 당시 무라야마 정권은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 세 당의 연립정권으로 제1당인 자민당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위한 속죄금(보상금)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의 사과편지가 들어 있었는데도 보상금은 국민모금으로 보내진 것에 대해 당시 한국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일본 정부의 관료도 기금관계자도 국민도 사죄와 보상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점은 사실이다. 그 점은 이해받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일본만이 생각해서 안을 내라고 하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고노 담화에 근거해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도 한·일 협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무라야마 전 총리를 비롯해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교 교수 등 국내외 전문가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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