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⑦ 소설 - 전성태 '성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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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다문화 등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로 그 현장에서 다루는 소설가 전성태씨.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실감 안에서 풀고자 한다”며 “글을 쓰다 보면 고민의 길이 보이며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의 북한군·중국군 묘지, 통칭 적군 묘지다. 6·25 전쟁 때 전사한 이들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묘는 고향을 바라보도록 북향으로 만들어졌다. 묘지석엔 대부분 이름 대신 유해가 발견된 날짜·장소가 적혀 있다. 더러 이름이 있는 묘지는 남파 간첩들의 것이다. 남파 임무와 이름·계급이 새겨져 있다.

 소설가 전성태(45)는 2010년 초 이곳에 있었다. 본지의 정전 60년 기획에 참여해 석 달간 동해 최북단 저도어장부터 강화군 말도 한강하구 중립지역까지 분단 현장을 훑었다. 몽골·두만강변 등 변방에서 다문화·분단 같은 오늘의 문제를 다루는 ‘발로 쓰는 소설가’다운 행보였다. 군 복무 했던 강원도 화천에선 터미널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노인과도 재회했다. 그런 경험이 녹아 있어서 그의 소설은 생생한 배경과 입체적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단편 ‘성묘’의 배경은 이 기구한 묘역이며, 주인공은 ‘적군’을 애도하는 노인이다. 묘지 옆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승리상회’ 주인 박 노인이다. 퇴역군인이기도 한 박 노인은 적군 묘지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다. “보통 원혼들인가.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었다.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이름 없이, 찾는 발길 없이 세월에 깎이고 있었다.”

그 옆 밭에서 농사짓는 노인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새 무덤이 생기면 소주 한 잔씩 올리고, 명절이면 성묘도 했다. 중국군 묘지엔 더러 중국 관광객이나 성묘객이 들었다. 북한군 묘역은 쓸쓸했다. 그런데 어느 명절께부턴가 서해 반잠수정 침투 간첩의 묘지에 국화가 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추석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 노인은 꽃다발을 든 묘령의 여인과 버스를 같이 타는데 … ….

 숭실대 이경재(국문학) 교수는 노인의 애도 행위를 작가의 소설 쓰기에 대한 비유로 읽는다. “전성태는 전쟁과 분단으로부터 비롯된 여러 가지 사건들에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해 온 대표적 작가”라며 “그러한 노력을 통해 그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자들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여 주곤 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변방에서 분단 현실을 직시하는 이 일에 요즘 여러 장르 예술가들의 관심이 늘었다. 올 6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선 남북한 건축에 대한 아카이브 전시를 연 한국관(커미셔너 조민석)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 대표작가인 문경원·전준호 또한 북한 식당을 배경으로 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전성태도 이 작업에 참여했다. “제안을 받고 다들 다른 지점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며 “국제 체험이 늘면서 한국에서 예술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생기고, 우리의 특수성을 보편화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이어지는 험한 현실에서 한갓 소설이 무슨 힘이 있을까. 전씨의 답은 이랬다. “세상에 번거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질문을 내면화할 수 있는 훈련을 독자와 함께 하는 것, 힘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의미는 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성태=1969년 전남 고흥 출생. 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등.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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