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은 또 다른 세계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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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해마다 이 계절이 되면 수많은 졸업생들이 배출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저마다 한 단계의 학업을 마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학업의 문을 열기 위하여 하나의 계단을 넘어서다.
졸업은 학과과정을 마친다는 뜻이지만 마친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란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학교뿐만이 아니고 모든 열에 종말과 시작을 동시에 경험한다.
탄생은 죽음을 동반하며 죽음은 동시에 또 하나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생들은 학교의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미지의 세계로 방을 내 딛는다. 간혹 졸업이 그 학구하는 일의 마지막인 것처럼 착각하여 책도 사색도 졸업과 함께 내동댕이치는 성급하고 단순한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배움이란 것은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고 참다운 인생, 삶의 깊고 갚은 진실에 부딪치면서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것이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또 노년으로 끊임없는 출발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졸업이라고 하는 출발은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학교교육이란 지식을 흡수하는 것만이 그 전부가 아니며 그 학교생활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닦아지는 인격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려 있는 비리와 모순, 또 슬픔의 벽에 부딪치면서 지금 졸업하는 학생들은 그 가치기준을 확고하게 다듬고 좀더 나은 사회, 좀더 나은 인간의 짐을 마련하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얼었던 대지를 밀고 일어서는 봄날의 새싹은 겨울동안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직 잠자면서 쉬고 있었으며 그 긴 동면동안 새로운 봄을 위하여 끊임없이 힘을 비축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곧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잎은 나무가 되고 해마다 다른 꽃이 되며 열매가 된다.
열매도 앞도 모두 떨어지는 가을날 자연은 다소곳이 그 질서에 순응하여 망설이지 않고 그 외향적 삶을 포기하는 지혜가 있다.
삶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진실의 의미가 더 중요한 것이다.
기존의 질서를 긍정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 전통을 계승하는 참다운 태도-모자라는 것은 보완할 줄 알고 나쁜 것은 잘라낼줄 아는 결단, 옳은 것은 굳게 지킬줄 아는 지조-이것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부모로부터 육신을 받는 그 순간부터 사회성을 띠고 있다.
부모 형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투면서먹고 자고 웃고 울지 않을 수 없는 이 사회성은 곧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수반한다.
연대의식이나 책임감은 우리를 삶 속에 비끌어 매어 두는 가장 질긴 밧줄이다.
이 밧줄은 아무리 끊으려해도 끊을 수가 없으며 아무리 몸부림쳐도<없는 상태>로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곧 자기의 삶을 충실히 하는 길과 같다.
누구도 자기의 삶을 대신 살아줄수 없는 냉엄한 생의 실체, 외로움도 고통도 모두자기 혼자 감수하고 극복해야하며 철저히 혼자 살면서 또 철저하게 이웃과 연결되어있는 모순되고 고달픈 우리들의 삶, 순간마다 충실히 자기 삶을 사람하지 않으면 후의의 늪 속에서 허위적 거리게 된다.
이렇게 삶은 엄숙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가치가 있으며 사랑스러운 것이다.
긴 여행을 출발하는 사람은 튼튼한 신발을 신고 따스하고 안전한 옷을 입고 필요한 물건과 함께 마음 또한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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