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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 감감…뒤늦은「공개수사」|"범인들 집 근처서 윤상군 뒤 따라 갔을지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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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효주양 유괴사건의 충격이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드러난 유괴사건이었다. 윤상군 유괴사건은 유괴기간이 1백6일이나 되고 비교적 저항력이 강하고 다루기 어려운 중학생을, 그것도 한낮에 납치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사건은 여자가 낀 3∼4인조의 범행인데다 4천만원의 몸값을 요구하던 범인들이 유괴가 아닌 교통사고로 인한 치료를 위해 빚어진 것이라고 엇갈린 협박을 하고있어 피해자의 생사여부와 합께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과 피해가족들은 범인의 자수와 함께 광범위한 시민들의 협조를 기대하고있다.

<유괴경위>
어머니 김해경(41)에 따르면 윤상군은 사건발생 당일인 지난해11월13일(목요일)하오4시쯤 평소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을 벗고 희색「체크」무늬바지와 회색과 감색이 섞인「세무·잠바」로 갈아입은 뒤 20분쯤 짐에서 쉬다가 하오4시30분쯤 누나 연수양이 참고서를 사다달라고 부탁하고 취미인 우표수집을 하기 위해 우체국에 우표수집회원 예치금도 낼겸 어머니 김씨에게서 현금1만7천원을 받아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집에서 불과 5백m 떨어진 책방(수랑서점·주인 장점남·24·여)을 거쳐 이곳에서 다시 1km쯤의 거리인 마포우체국까지는 3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는 윤상군의 걸음으로 왕복1시간이면 충분히 볼일을 마칠수 있는데도 윤상군은 이날밤8시10분쯤 협박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윤상군이 수랑서점에 들러 주인 장씨에게 누나가 부탁한 책을 찾았으나 마침 재고가 없어 사지 못했으며 우체국에는 예치금이 접수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서점에서 공덕동「로터리」를 거쳐 마포우체국에 이르는 길목에서 유괴되었거나 윤상군이 평소 신체가 부자유스러워 가까운 거리도「버스」를 타고 다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집에서부터 윤상군을 뒤따라간 범인이「버스」안에서 유혹, 데려갔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협박전화>
윤상군의 집에 첫 협박전화가 온 것은 윤상군이 납치된 날(지난해11월13일) 하오8시10분쯤.
하오5시쯤 귀가하겠다던 아들이 3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어머니 김씨가 수화기를 들자 40대 남자목소리로『당신 아들을 수원에 감금시켰다. 우리는 4명의 전과자들로 일본으로 밀항할 자금이 필요하니 윤상이의 몸값으로 4천만원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오 8시30분쯤 또 전화가 걸려왔다.
공포에 질린 윤상군의 어머니가『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줄테니 제발 윤상이를 살려달라』면서 애원하자『경찰에 신고하면 윤상군의 생명이 위험할 줄 알라』고 협박한 후 전화를 끊었다.
범인은 2시간30분 후인 하오11시쯤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의 납치소식을 듣고 급히 귀가한 윤상군의 아버지 이씨가 전화를 받자『날 모르겠느냐. 당신 때문에 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옥살이까지 해 당신의 가게와 집을 폭파하려 했다』며 4천만원을 고액권 헌 돈으로 준비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씨가『당장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며 2천만원만 준비해 놓겠다고 사정하자 범인도 이에 동의,『내일 낮12시에 다시 전화를 할테니 준비해 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튿날(14일) 범인들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15일하오10시15분쯤 20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편지를 보내겠다. 편지에 적힌 대로하라』고 말했다. 16일 하오6시46분에는 젊은 여자가 전화를 걸어『이분이 하라는 대로하세요.그렇지 않으면 나를 죽일 거예요』라는 윤상군의 목소리를 녹음으로 들려준 다음『자세한 지시는 편지로 알리겠다』며 끊었다.
첫 협박전화 이후 범인들은 1월31일까지 3∼4명의 다른 목소리로 62차례의 전화를 걸어왔는데 공중전화인듯 3분만에 자동적으로 끊겼고 이중 33차례의 전화는 아무런 말 없이 수화기만 들면 끊어버렸다. 협박전화는 공개수사가 시작된 둘쨋날인 27일 상오7시30분쯤 윤상군 집에 다시 걸려왔는데 아무런 말이 없어 어머니가 아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하자 1분만에 전화가 끊겼다.

<협박 편지>
범인들이 보낸 5통의 협박편지중 수원우체국소인 편지가 1통, 서울 광화문·중앙우체국소인편지가 4통이었다.
첫편지는 지난해 11월17일자 수원우체국소인이 찍힌 것으로 20일하오7시 서울종로2가 고려당으로 딸을 시켜 2천만원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유괴이후 4차례의 편지는 ▲80년11월28일 서울중앙우체국소인=누군가 신고를 했다. 지시대로 움직여라. ▲지난1월 서울여의도우체국소인=모든 것을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 ▲지난1월23일 서울중앙우체국소인=31일7시 수원역에서 윤상이를 데려가라는 내용.
▲지난2일 서울광화문우체국 소인이 찍힌 5번째의 마지막 편지=범인들은 지금까지의 요구조건과 태도를 바꿔『미안하다. 사실대로 말하고 죄의 대가를 받겠다. 후진하던 내 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일단 집으로 옮기자는 운전기사의 말에 윤상이를 데려갔다. 교통사고를 감추기 위해 유괴를 위장했다가 정말 유괴범이 되고 말았다. 아직 정상은 아니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일단 안심하고 자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진지한 내용을 담은 장문의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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