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아만 돌아와다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괴된 윤상군의 담임교사 오숙방씨(29·여)는 이군의 학교성적이 90점 이상으로 학급에서 항상 수석을 다투어왔다고 말했다. 오교사는 실종다음날 부모들의 통보로 유괴사실을 알고있었으나 유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학교 안에서 일체 비밀로 해왔으며 새로 나온 2학년 교과서를 보관한채 급우들과 함께 윤상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안타까와했다.

<유괴된 윤상군>
결혼1년 만에 첫딸 연수양(15)과 2대 독자 윤상군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귀한 자식을 시샘하듯 윤상군이 세살 되던 해 소아마비에 걸려 한달을 고생했으나 다행히 왼쪽다리만약간 절 정도로 치료되었다.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던 윤상군에게 시련은 두차례나 더 찾아왔다.
유석초교 3, 4학년때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왼쪽허리에 세균성염증이 생겨 두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몸이 불편한 대신 윤상군은 모든 방면에비상한 재주를 보였다.
5살매 누나의 책받침을 가지고 놀며 자음·모음을 익히더니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6살때는 구구단을 외고 어머니 김씨에게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 초등학교 입학 전에 모두 떼어 주위에서 천재소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성적도 항상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였고 유석초교 6학년 때는 불편한 몸으로 전교어린이회장을 맡았었다.
경서중 입학때는 배치고사에서 전교1등을 차지했었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차분해 웬만한 교우관계를 가졌으나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밖에 나가는 일이 없었다.
방에서 우표책을 정리하거나 담벽을 강대로 야구공받기·탁구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 동네어린이들과는 별로 어울리는 일이 없었다.
윤상군은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도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체격도 남달리 큰데다 2대 독자여서 부모들의 귀염을 한 몸에 받고있었다.
누나가 등교할 때면 시간표에 맞춰 책가방을 챙겨줄 정도로 총명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엔 글짓기·미술·서예·웅변 등 다방면에 탁월한 재주를 보여 그동안 받은 상장·「트로피」등이 30여개나 된다.
특히 5살때부터 시작한 우표수집은 전문가수준. 우체국에 예치금을 넣어놓고 신종우표를 배달 받아 이젠 우표책2권이 가득차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음악에도 취미를 붙여 직접 작사·작곡까지도 했다.

<가족·집주변>
아버지 이정식씨(44)는 11살 때 고아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다 17년전 서울청계천3가에서 전기용품상을 하는 매형 밑에서 종업원으로 출발, 9년 만에 자기 가게를 차릴 정도의 성실한사람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전열기 재료를 판매하는 대성사는 3평 정도의 소규모 가게나 시가 4천만원을 홋가한다. 한달 수입은 1백여만원.
69년에 마련한 대지40평·건평 16평의 집과 서울근교에 있는 목장 등을 합한 이씨의 재산은 1억2천여만원.
이씨의 집이 있는 공덕동184 일대는 서민층이 많이 사는 산동네여서 이씨 집은 가장 잘사는 집에 속할 정도.
이윤상군 유괴사건 일지
▲80.10.13 이군 누나 연수양 유괴미수 ▲80.11.13 윤상군 유괴, 첫 협박전화(하오 8시10분)
▲80.11.14 경찰에 신고, 수사본부 설치 ▲80.11.16 윤상군 육성전화로 들려줌 ▲80.11.17 『고려당으로 2천만원 보내라』첫 협박편지 ▲80.11.20 연수양이 돈을 갖고 고려당으로 나갔으나 접촉실패 ▲80.12.12 아버지 이씨가 범인 요구 따라 서울역 앞 시계탑으로 나갔으나 나타나지 않음 ▲81.1.31 범인들의 전화에 따라 수원으로 윤상군을 데리러갔으나 안나왔음▲81.2.2 5번째 편지이후 소식 끊김 ▲81.2.26 현상금1천만원 걸고 공개 수사 ▲81.2.27 상오7시30분 협박전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