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재주만 부리는 정치인은 물러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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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게 우리는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시대가 시작되려는 중차대한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구시대의 질서는 와해되고 새로운 토대 위에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어 가는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들이켜보면 우리는 짧은 헌정사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계속된 정치적 시련으로 너무나 뼈아픈 많은 교훈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아픈 과거들이 오늘에 와서 새 질서의 새 시대를 구축하는데 굳건하고 영원무궁한 뿌리가 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의 더 없는 다행이겠으나 또다시 시행착오의 정치적 학습을 거듭하는 과오를 저지른다면 우리 국민은 다시는 구제 받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헤어날수 없는 어려움에 빠질지도 모른다.
숱한 사람들이 정치에 낙상, 멍이 들고 떠나간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정치 지망생들이 등장, 작금의 정계는 정치포화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어 모든 국민이 불안과 근심에 떨고 있을 때는 다 어디에 들 가있었는지 알 길 없는, 듣도 보도 못하던 인사들이 구국의 일념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앞세우며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그럴듯한 주의주장아래 정당을 만들고, 그렇게 급조된 정당의 공천을 따내려고 흡사 대학입시 원서마감 직전의 풍경을 연출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정치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탁월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과욕과 흥분만으로 맹목적인 민주주의의 구호에 열을 올리고 구시대의 비호와 감독아래 긁어모았을지도 모를 돈으로 감히 참신 운운하며 핏대를 세우는 보따리 정치지망생이 없지 않다고 들을 때, 모처럼 세우려는 민주의지의 탑이 그들로 인해 허물어지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당 저당을 후조처럼 기웃거리며 정가를 헤매다가 아니 되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했다가 투표직전에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한밑천 두둑이 얻어내고 명예로운(?) 퇴진을 한다는 구시대의 악습을 반추할 위험인물은 없는가? 나라야 어찌되건 국민의 간절한 포구가 무엇이건 우선 당선이나 되고 본다는 선거양상이 재현되는 한 우리국민 모두가 그렇게 소망하는 올바른 정치. 이상적 민주주의의 실현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치인은 국가정책의 입안자요, 감시자이며 그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한 나라의 대표적 지성집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할텐데 그럴만한 경륜도 능력도 별로 없이 단지 시류에 적당히 견습하여 명예나 권력을 탐하는 후안무치한 인물이 있다면 차제에 국민모두의 냉엄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우리가 진정 바라고 원하는 정치인은 지조와 성실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얄팍한 잔재주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며 눈앞의 소리에만 급급한 사람이 이재 국정에 가담하는 불행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멸사봉공의 일관된 정신으로 직분에 충실, 국민이 원하는바가 무엇이며 과연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가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치인의 그릇된 판단하나가 국가와 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안겨준다는 역사의 교훈이 우리에게 있음을 재인식할 때, 뜨거운 애국심을 소유한 인사가 우리 앞에 나와 이 새로운 시대의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갈 십자가를 진다는 구도자의 겸허한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강력한 법의 계약도 결국 도덕이나 양심보다 못하다는 진리처럼 다가오는 선거에는 국민모두가 스스로 법을 지키며 행동을 삼가서 너나할 것 없이 새시대의 주역임을 실증해야 하며 예전의 선거에서 보여왔던 그 우울하고 서글픈 이야기가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도록 모든 사람이 공명선거의 정수가 되어야한다.
우리 국민은 지금 민주주의의 가혹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누구나가 가지는 한결같은 열망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올바른 선거로, 진정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사람이 국정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보다 냉철한 판단으로 선거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국가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마음자세로 투표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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