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작품 아직은 없어|한국의 추리문학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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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외국인기작가의 추리소실이 국내에서「붐」을 일으킬 경도로 많이 읽히고 있으나 국내작가의 추리소실은 몇편 되지 않고 본격적이라 할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
추리소실이 재미있게 고도의 문학적 주제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이 있을 수 없는 세계문학의 추세다.
추리소설은 이제까지 정석처럼 돼왔던「에드거·앨런·포」나「코런·도일」류의 괴기·탐정놀이를 벗어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문학성과 사회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 이 같은 주제들을 흥미 있게 펼쳐나감으로써 경치·사회·경제 각부문의 부정·부조리를 파헤치거나 개인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하는데 딴 소설과는 또 다른 장점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추리소절이 단순한 탐정물이나 무협소설 정도의「레벨」로 밖에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을 작가들의 책임으로 지적하는 평론가들이 많다.
또 해방이후 이른바 민족문학·순수문학이 자리잡은 후『순수문학이 아니면 문학이 아니라』는 고정관념과 문단적 세력이 지배하여 다기한 문학형태가 싹트고 자라나지 못한데도 그 원인이었다.
우리나라 추리소절은 김내성씨가『마인』『황금박쥐』『검은 별』등을 발표했고 방인근씨가『대도와 보물』을 내놓아 60년대 초까지 가느다란 명맥을 유지했으나 그나마도 잘려버렸다.
70년대에 들어서 현재훈씨가『뜨거운 빙하』『흐르는 표적』등 장편추리소설을 쓰고, 김성종씨가『최후의 증인』등을 발표해 추리소설이 다시 등장했고, 조해일씨의『갈 수 없는 나라』, 노원씨의『악마의 일력』등이 뒤를 잇고 있다.
이 같은 70년대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의 보급이란 점에서 그전의 김내성·방인근씨가 가졌던 공적을 나누어 가질 수 있으나 본격적인 추이소설의 등장이냐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많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추리소설의 골격을 ⓛ수수께끼(살인·의혹 등) ②복수이상의 용의자 설정 ③추리자 ④논리의 축적 ⑤해결부문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추리소실의 골격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추리소설은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수수께끼 부분이 단순하고 추리자에게「리얼리티」가 없다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살인이나 의혹은 그 배후에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점을 깔아 독자를 흡입시켜야 한다. 또 추리자는「만능」이나「천재」가아닌「발로 뛰어 문제를 해결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논리적 과정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살피고 나서 해결에 도달해야하며 독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해결은 실패라고 하겠다.
해결부분에서도「어떻게」라는 점이 강조되고「왜」라는 점은 소홀히 되고 있다. 추리소설이 단순한 사건의 해결이 아닌, 사건의 원인·배경을 파헤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은 오랜 일이다.
우리의 경우 정치·사회·경제 등의 문제점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리의 형식을 빌어 이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추리소설의 한계에 부닥쳐버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2∼3년 사이에 추리소실에 관심을 가지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황석영씨가『번간?의 집』, 유지종씨가『형제』, 이문열씨가『사람의 아들』등 추리적수법의 작품을 내놓았고 조선작·최인호씨등도 추리소실에 관심을 갖고있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이 자리잡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가 역량 있는 각가의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들 젊은 작가들이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작가 층의 확대와 합께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을 가진 평논가도 많아져야 할 것이다.
추리소설은 또 경적으로 많이 나와야한다.
우리나라독자층이「크리스티」나「모리무라」(삼촌성일)등 외국작가의 작품에 익숙해있는 것도 국내작가의 작품이 그 만큼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내작가가 많은 작품을 써낼 경우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추리소설이 많이 읽히는 것은 그 속에 다루고있는 사건이 생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범죄의 경우 그 배경에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문학인구도 늘릴 수 있는 추리소실의 질적·양적 확대가 기대된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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