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복지연금과 퇴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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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복지연금의 실시가 재론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마련하여 경제기획원·보사부와 협의를 마친 국민복지연금은 83년부터 1백인이상 사업장부터 시행하여 적용대상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73년에 제정된 국민복지연금법을 고쳐, 사용자와 근로자의 기금부담률을 약간 낮추는 한편 기업의 신규부담을 고려하여 퇴직금제도를 개선토록 하며 연금도 국민투자 기금에 예탁하지 않고 서민주택건설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정방향은 지난날 국민복지연금의 목적이 복지증진 자체에 있지 않고 사업전망이 불투명한 중화학건설자금 조달에 있다는 반대론 때문에 좌절됐던 사질을 염두에 두고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명칭이야 어떻든 한국개발연구원이 성안했다는 국민복지연금의 성격이 과연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을 제대로 도입한 것이며 「복지」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올바로 선정하고 있느냐에 는 이견이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복지연금의 수혜 대상자가 우리 나라의 소득계층 가운데 정부가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할 절대빈곤 계층도 아닐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노후생활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경부가 관심을 갖고 생활을 지원해야 할 서민계층은 안정된 직장을 확보한 근로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세입의 일정량을 복지연금(welfare pension)으로 조성해나가서 생활무능력자, 예컨대 노령이나 신체장애 등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계층을 구제해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이며 갹출연금을 지불할 수 있는 생활능력자에게 먼저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한국개발연구원의 안대로 기업과 근로자가 기금을 부담하고 그 대신 퇴직금을 삭감토록 한다면 민간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퇴직금제도를 정부의 복지연금제로 대치한다는 의미밖에 찾을 수가 없다.
정부가 복지연금이라는 이름아래 일종의 강제저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는 인상만 줄뿐이다.
정부는 복지연금을 관리할 기구를 설립하고 기금관리를 위한 행정비와 발생할지도 모르는 결손액만 부담키로 하고 있으므로 내자동원수단의 하나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복지」라는 것은 협의로는 사회보장수준을 말하나 최근에는 주택·생활환경 등 물적 시설에서 교육·안전·정신적 행복감까지 포함해서 뜻하고 있다. 이 모두가 경제규모의 확대와 함께 정부의 세입이 증가하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우선 손쉬운 대로 기업과 종업원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복지연금을 강행하면 오히려 기업활동의 위축, 제품원가의 상승, 근로자의 의욕 저하 등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완벽하다는 일부 서구국가에서 근로자의 의욕상실, 고세금으로 인한 기업의 해외도피, 또는 생산성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정부가 국민복지를 증진시키는 지름길은 효율적인 경제정책의 집행으로 국민의 소득 수준을 향상시켜 장기적인 생활설계를 각자가 자유롭게 꾸며 나가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경제정책의 강제개입이 과도하면 할수록 자유경제의 원리나 강점은 퇴색하게 마련이다.
바람직한 것은 저소득층의 소득증대를 실현토록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북돋는데 있을 것이며 고부담→고보장은 결코 국민복지의 본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복지연금제를 그래도 시행하려면 기업·근로자의 부담률을 연차적으로 축소하면서 정부의 재정기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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