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삵의 방식이자 「존재의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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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여름 오정희씨는 몸과 마음이 다 더위를 먹었다.
생활과 관련된 암울한 의식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살았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이야기와 같이 지난여름 아주 더운 날 묘지에 간 일이 있어요. 그 기억이 당시의 심정과 접합되어 이 소설이 써졌습니다.』
그날 오씨는 「묘지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밀착된 절박한 문제나 삶의 모습에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도 포함해서. 오씨는 이러한 묘지에서의 생각이 지난여름 자신을 지탱하게 됐던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짓누르는 암울한 의식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답했다.
오씨의 소설『불의 강』『안개의 둑』들을 읽으면 낯선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 낯설다는 느낌은 독자들이 전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체험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삶의 여러 가지 본질적인 문제를 새롭게 일깨우기 때문이다.
오씨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여러 문제들을 어떤 거짓도 적당한 타협도 없이 써 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써 나가려할 때 항상 부닥치는 문제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의로움이라고 했다.
『만남과 헤어짐은 모든 관계의 원형이고 기본「리듬」입니다. 살아가는 일은 그것을 끊임없이 변주시키는 과정이겠지요. 그러나 만남은 그것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외부와 내부의 작용, 즉 타의와 환상에 의해 위협받습니다』
오씨는 사람은 그가 갖는 환상 때문에 만남이 불가능하고 삶에 본질 적으로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완구점 여인』으로 당선, 문단에「데뷔」한 오씨는 79년『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 동안 30여 편의 단·중편소설을 발표했다.
『글을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 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의 방식입니다. 흔히 글을 쓰는 일을 「고통의 확인」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존재의 확인」이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부닥치는 여러 문제들과 알 수 없는 구석들을 소설로 쓰고 싶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고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신비함이 있어요.』
자가로「데뷔」한지 13년이 된 지금 독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올해는 꼭 장편을 하나 써내겠다고 한다.
47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고·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78년부터 부군을 따라 춘천에서 산다.
두 남매를 두고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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