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홍콩」서 본 그 실상과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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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에는 요즘 「칠기부장관」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국무원의「미사일」병기 제조를 관장하는 제7기계공업부장관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이 아니다. 「컬러·텔리비전」·녹음기·전축·세탁기·사진기·자봉를·전자「라이터」의 일곱물품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 말의 유래가 재미있다. 중공에서 외국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외교관이나 고급관리들, 그리고 각종 국제회의나 체육경기에 참가하는 예술가나 체육인 정도다. 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이들, 특히 고관들은 으례 그 일곱가지 품목중에 서너개씩은 가지고 귀국한다. 서민들이 이를 비꼬아 이 고급제품에 붙인 이름이「칠기부장관」이다. (홍콩 「경보」지)
인민일보는 80년 7월 21일『현재 외국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간부들이 모두 특산품을 가방 가득히 사들고오고 있을뿐 아니라 고급시계·「텔리비전」수상기와 세탁기를 휴대해 오고있다』며 『인민들은 고급관리의 그와같은 행위를 법률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물품은 서민들에게는 아직 사치품이며 그림의 떡이다. 그러므로 공산당간부들이 외국서 마구 반입하는 이들 고급품에 붙여진 「칠기부장관」이라는 은어에는 서민들의 원성이 짙게 서려있다.
당부주석 진운. 중공 제1의 경제관료이며 청렴솔직하고 기개드센 78세의 노인이다. 진운은 문화혁명 당시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다는 비판을 받고 숙청을 당했다. 모택동은 그에게 다시 일하자고 간곡하게 권유했지만 『아프다』며 이를 뿌리친 인물이다.
그런 진운이 79년4월말 당과 정부의 차관급, 군구부사령관및 지방 성정부의 부성장급 이상의 고위 관료들을 모아놓고 질타했다.
『문화혁명 당시 고관들의 집을 뒤지는 홍위병 청소년들의 눈앞에는 많은 고급품들이 쏟아져나왔다. <문화혁명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현재에도 그런 고급품을 가지려 급급하고 있다.
여기에 앉은 동지들 가운데 집안에「에어컨」·세탁기·냉장고가 없는 사람이 있느냐. 「텔리비전」수상기를 예로 들어보자. 여러분의 집안에 서양제의 「텔리비전」 수상기가 없는 동지는 손을 들어보라! 우리 집에도 서독의 「지멘스」사 제품을 갖고 있다.』 (「칠십년대」지)
진의 연설은 두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하나는 다른 나라라면 차관급이나 부성장급 이상의 고관들 집에 그 정도의 생활용구가 갖추어져 있는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될 터인데도 진이 그점을 문제삼았다는 것이다. 중공의 일반적 생활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하는 한 증거다.
둘째 고관들이 서양제의 가전제품을 아주 좋아하고 있다는 풍조가 확인된 셈이다.
「홍콩」의 양연은 80년초 광동성 산촌에 살고있는 질녀의 혼인선물로 14「인치」짜리 「컬러· 텔리비전」 수상기 한대 (광주에서 싯가 2천원) 를 부쳤다. 광주세관은 관세로 3천5백원을 징수했다.
고관들의 한달 급여액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주석 등소평이 70년대말에『봉급이 얼마냐』는 외국방문객의 물음에 1백80원이라고 대답한적이 있다.
이 사실로 미루어보면 중공에서 「컬러·텔리비전」수상기 한대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해진다.
동경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술연수·시찰등의 명목으로 방일하는 중공관리나 기술자들이 귀국할 무렵에는 일본에서는 버릴데를 찾기가 힘든 고물「텔리비전」수상기를 찾아나서는 진풍경이 더러 일어났다.
그래서 중공과 거래하는 몇몇 일본상사는 그 딱한 모습을 보다못해 아예 고물 「텔리비전」을 수거하여 수리해놓는 전담직원을 두고있는 형편이다. 「요꾜하마」(횡빈)의 한 중국어통역은 일본에서 10만「엔」정도하는 「컬러· 텔리비전」수상기 (14「인치」짜리) 를 5천「엔」에 사려는 중공손님도 있으니 폐품수상기를 수리해놓지 않을수 없다고 했다 (「홍콩」의「경보」지에 실린 한 재일화교의 기고문).
한 북경주재 미국특파원은 지난해 봄 북경의 화평「호텔」근처에 고관들의 자제들로 꽉차있는 퇴폐적인「카페」(술집)가 등장했다는 제보를 받고 그곳에 취재하러 갔다. 그가 휴대용 녹음기를 둘러메고 그「카페」에 들어갔을 때 청소년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값은 따지지말고 그 녹음기를 팔라고 졸라대는 통에 혼났다고 했다 (미「워싱턴·포스트」지) .
지난 2년동안「칠기부장관」, 그중에서도 특히「텔리비전」과 녹음기겸용의 「라디오」 에 대한 소유욕구는 대단하다. 최근에는 전자계산기의 인기가 높다. 한 화교사업가는 합자투자를 상의하기 위해 국무원의 관계부서에 전자계산기 5백대를 기증했다. 세관당국도 북경의 관리들에게 선물할것이라는 이 화교의 말을 듣고는 한푼의 관세도 징수하지 않았다.
암시장이 번창하고 밀수가 성행하는 현상(중공의 공식표현임)은 이런 사회적 배경때문이다.
「홍콩」에서 4만원정도 하는 녹음기가 상해에서 그 6배나 되는 25만원이나 나가도 암시장 (농민이나 노동자의 부업품을 사고파는 자유시장과는 다름)에선 물건이 오히려 달린다.「홍콩」화교들의 대륙보따리장수행렬이 자꾸만 불어가는 것이라든가, 「홍콩」의 가전업계가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는 배경도 이와같은 「중공특수」에 힘입고 있다. <이수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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