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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규제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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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들에게 규제정보포털 개편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허 진
정치부문 기자

#1. 청와대가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국무조정실로부터 규제정보포털(www.better.go.kr) 개편방안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이 직접 화이트보드에 그림과 도표를 그려 가며 규제개혁 방향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20일 규제정보포털에 들어가 봤다. 초기화면에 “8월 21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는 안내문구만 있을 뿐 하루 종일 먹통이었다.

 이 포털은 1월 28일 처음 문을 열었다. 지난달 22일 국무회의에서 시연회까지 했다. 이런 곳이 여전히 ‘공사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 기술적인 문제로 완전한 재단장은 다음 달 추석 전께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 박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서 “감사원이 조금 혁명적인,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공무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을 능동적으로 추진한 공무원에겐 감사원 감사를 면제받도록 법으로 규정하라고 지시했다. 당초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그러나 감사원의 반대로 이 조항이 빠졌다. 박 대통령은 감사원이 돌려 놓은 조항을 되돌리면서 ‘혁명적’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20일 감사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개정안을 만들 국무조정실이 공식 문서를 보내오면 법무담당관이 (감사면제 조항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감사원 내부적으로는 감사 자체를 면제해 주는 데 부정적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틈만 나면 규제개혁을 강조한다. 경제를 살리려면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를 하려면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게 급선무라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청와대는 당초 20일 제2차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전국에 7시간 동안 생중계된 지난 3월 제1차 끝장토론 때 정부는 52개의 현장 건의과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5개월이 흐른 지금 실제 약속이 지켜진 건 27%인 14건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한 약속도 지키고 있지 않은 셈이다. 전체 규제 숫자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지적하며 제대로 준비가 될 때까지 2차 회의를 연기하라고 했다고 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규제개혁은 정말 혁명보다 어려울 수 있다. 대통령과 공무원이 지금처럼 따로따로라면 대통령이 아무리 열심히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더라도 실패를 피하긴 어려울 거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