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으로 무병장수|경북 월성군 산내면「시루미기」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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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가 끝나자 개다리소반 가득히 푸짐한 점심상이 들어온다. 산중 성찬이라 구수한 김치찌개·냉이국·김이 나는 더운밥을 상상했다가 아연실색.
물에 불린 날콩과 밀쌀, 마른 들깨가 밥이고 연한 솔잎과 마른 찔레꽃 열매가 반찬으로 놓여 있다.
밥상주위에 둘러앉은 8명의 처녀들은 솔잎과 찔레꽃 열매, 날콩을 맛있게 잘도 먹는다. 흡사 풀밭에 풀어놓은 산양 같은 생각이 든다.
경북 월성군 산내면 우나2리 산90. 일명「시루미기」마을이다.
신선들이 노니다가 바위를 쪼개보니 시루떡처럼 갈라지더라고 하여 예부터「시루미기」산으로 불리는 구일산(해발9백50m). 산봉우리를 향해 계곡을 타고 2시간쯤 오르다보면 정상 가까이 문명을 등진 채 주민 모두가 생식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인 마을을 만난다.
마을 주민은 모두 63명. 대부분이 단양 조씨 성을 가진 일가친척으로 구성된「형제마을」이기도 하다.
주민들 사이에 어린아이들을 찾아 볼 수 없고 모두가 20대 청년·처녀들과 나이든 노인들이 남녀 반반의 비율로 구성된 것도 한 특징이다.
이 마을에서 2㎞쯤 내려가는 우나2리 주민들과는 거의 왕래가 없다.
이들이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양식이 모두 일반 주민들과는 다른 생식으로 일관되기 때문이다.
밀밭을 일궈 생산한 밀쌀을 물에 불려 주식으로 삼고 밭에서 나온 날콩·마늘·들깨·찔레꽃 열매 등이 바로 매일 먹는 음식의 전부다.
『정신의 기름이 성령이라면 육신의 기름은 피지요. 신앙생활로 정신을 맑게 하고 생식으로 몸의 피를 깨끗이 하며 하루하루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가만히 입 속으로 주기도문을 외는 한 50대 여인은 주름살하나 없는 얼굴에 온화한 윤기마저 흐른다.
「시루미기」생식마을이 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것은 지난 62년.
현재 마을에서 가장 웃어른 격인 정평화씨(72)와 부인 조춘혜씨(56) 부부가 첫 터전을 마련하고서부터다.
독실한「크리스천」인 이들 부부가 속세를 떠난 철저한 신앙생활을 위해 소백산 화전민 생활에 이어 이곳에 옮겨와 살기 시작한 이후 이 골짜기는 생식을 통한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정씨 부부가 자리잡은 이듬해부터 이들 내외의 생식을 통한 신앙생활에 매료된 기독교인들 가운데 특히 부인 조씨의 자매·조카 등 가족들이 하나둘씩 찾아들어 현재의 조씨 성 마을을 이루었다.
이들 생식마을 주민들의 식단은 4∼5가지「메뉴」로 언제나 거의 똑같다.
어느 음식이나 식물성의 날것이고 굽거나 끓인 음식류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의 최대의 진수성찬은 여름철 참외·수박·오이·호박 등 각종 과일과 채소가 식탁에 오를 때다. 20년 가까이 생식이 습관으로 굳어진 이 마을엔 젊은이·노인 할 것 없이 대부분 10년 이상의 생식 경력을 갖고 있다.
『불고기·생선구이 등 화식을 하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느끼지만 생식하는 사람들은 끈기가 있어 하루종일 나무를 해도 허기를 못 느낍니다.』
고향인 충북 단양에서 여고를 졸업한 후 이곳에 가족을 따라 들어와 사는 조씨의 조카 조성선양(26)은 생 밀알 한 대접을 먹으면 하루 종일 배고픈 줄을 모른다고 했다.
조양은 또『집안 식구 모두가 생식만을 해온 탓에 저는 지금도 밥이나 반찬을 만들 줄 모릅니다』면서 낯을 붉혔다.
성선양의 사촌 동생 성석군(22)은 4살 때부터 생식을 해왔는데 한번도 잔병치레한 일이 없다며『우리 마을엔 위장병 환자가 한 명도 없다』고 자랑이다.
촌장 정씨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비교하면 육식 쪽의 성질이 훨씬 독하고 포악스럽다면서『식물성 생식을 하는 이곳 주민들은 하나같이 양처럼 순하다』는 설명이다. 안경 쓴 사람이 하나도 없이 눈이 밝은 것도 이 마을의 자랑.
처녀(22명) 총각(31명)은 많아도 이 마을에 어린이가 없는 건 모두가 한 일가로 근친결혼을 안 하기 때문. 정씨는 사내는 나이 차면 군대 나가고 처녀도 때가 되면 외지로 시집을 간다고 한다.
성석군은 산꼭대기에 양어장을 만들어 잉어·붕어를 키우지만 주민들의 식용이 아니라 물물교환용이라며 이 마을이 결코 이상 야릇한 이방지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월성=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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