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특기생 선발사기 혐의 대학교수·감독 등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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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축구 특기생으로 입학시키거나 프로·실업 팀에 입단시켜 주겠다고 속여 돈을 받은 현직 대학교수와 전 대학 축구부 감독 등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이들은 또 진학이 어려운 축구선수들을 “축구부 창단멤버로 선발하겠다”고 속여 대학 계약학과(산업체 근로자를 위한 정규 학위 과정)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시키기도 했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일 현직 대학교수 김모(60)씨와 전 대학 축구부 감독 현모(51)씨, 이들 사이에서 브로커 활동을 한 전 실업팀 축구선수 이모(42)·김모(32)씨 등 22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7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1명에게는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나머지 14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여기에는 전·현직 축구감독 6명과 대학교수 2명, 체육교사 4명이 포함됐다.

경찰에 따르면 현씨는 이씨·김씨 등과 함께 2010년 1월 김모(49)씨의 아들을 수도권 지역 모 대학에 축구 특기생으로 선발해주겠다고 속여 2000만원을 받는 등 2012년 9월까지 16명에게 총 7억2000만원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현씨는 “이 대학 축구부 감독으로 내정됐으니 감독 몫으로 몇몇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고 했고, 전 실업팀 축구선수였던 김씨와 이씨는 학생들을 모으는 브로커 역할을 했다.

또한 대학교수인 김모(60)씨는 이씨와 모 대학 명예교수 소모(60)씨 등과 함께 정모(47)씨의 아들을 프로팀에 입단시켜 주겠다며 1500만원을 받는 등 10명에게서 4억 5000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지역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한 경력을 이용해 대학이나 프로팀 감독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속였고, 이씨는 진학 또는 입단 여부가 불분명한 학생들을 물색해 오는 역할을 했다. 소씨는 김씨의 부탁을 받으면 자신이 명예교수로 있는 대학 축구부에 뽑아 줄 것처럼 속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와 함께 전 중·고교 축구부 감독 하모(60)씨는 경비업체 대표 구모(42)씨와 함께 2010년 11월 경기도 지역 모 대학에 창단되는 축구 선수를 모집하는 걸로 속여 학부모 신모(51)씨에게 1000만원을 받는 등 55명에게 모두 8억1000만원을 받았다. 하씨는 대학 계약학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학생들을 모집한 뒤 하씨가 운영하는 회사에 위장 취업시킨 뒤 대학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시켰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실제 동아리 활동 수준의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계약학과 제도는 산업체 근로자를 위한 정규학위 과정으로 국가나 지자체, 산업체 등에 고용된 사람이나 고용 예정인 사람의 직업교육을 위해 학과를 개설하는 것이다. 학비는 산업체 등에서 주로 부담한다.

경찰조사결과 피해자 가운데는 축구를 관두고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학생과 두 아들이 모두 계약학과 진학 사기에 당한 아버지가 있었다. 또 한 학생은 지방대 축구부에 정상적으로 다니다가 수도권 지역 대학축구부에 넣어준다는 말에 속아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은 창단되지도 않은 축구부 버스를 회비로 구입해 대학 로고를 새기고 운영하다 발각되자 멋대로 버스를 매각 처분하기도 했다.

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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