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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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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그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어느새 ‘실종자 10명’으로 뭉뚱그려져 내 안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18일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떠나기 전 세월호 사고 실종자 가족에게 “직접 찾아뵙지 못해 미안하다”며 편지를 띄웠다. “주님, 단원고등학교 학생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황지현, 허다윤, 단원고등학교 교사 고창석, 양승진, 일반승객 권재근, 이영숙, 그리고 일곱 살배기 권혁규 어린이가 하루빨리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보살펴 주옵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머물렀던 5일간 여러 차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교황이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찍힌 사진 한 장. 아기들에게 다가가 한 명 한 명 이마에 축복의 키스를 하는 교황, 한 ‘시크한’ 아기가 ‘당신은 누구신가요?’ 하는 태도로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아기의 무뚝뚝한 반응에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던 찰나, 교황이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의 입에 갖다댔다. 사진 속 아기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교황의 손가락을 빨고 있고, 교황은 이를 사랑스러운 듯 바라본다. 나에게 냉담한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나. 아, 먼저 손가락을 내밀면 되는 것이었구나.

 한번에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진 메시지는 다양하다. 사람마다 감동을 받은 지점도 달랐을 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움직인 건 ‘소통’에 대한 그의 메시지다. 교황은 “진정한 대화는 공감(empathy)하는 능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상대방이 하는 말만 들어선 안 된다.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해오는 그들의 경험·희망·소망·고난과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걱정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공감과 소통’, 어쩌면 지겹게 들은 말이다. 하지만 교황의 메시지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가 ‘과연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가’를 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인들도 잊어 가고 있는 세월호 실종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불러주는 방식으로, 마음을 열지 않는 아기에게 먼저 자신의 손가락을 쑥 내미는 것으로. 대화는 없고 독백과 방백만 떠도는 세상에 익숙해진 지 오래. 말뿐 아니라 눈빛과 몸짓으로 나누는 대화법을 이제부터 연습해도 늦진 않을까.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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