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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한 아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그만 고무신 가게를 하는지가 3년 남짓 되었다. 어느새 버릇처럼 아침 첫 손님에 얽힌 「징크스」가 생겼다.
그날은 마침 방학이라 집에서 놀고 있는 둘째 꼬마녀석을 데리고 가게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 사이에 손님이 사내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다. 대강 발에 맞을만한 신을 골라 신겼다. 사내아이는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발을 구르며 좋아한다.
그때였다.
우리 집 둘째 놈이 『아 저거 홍길동, 참 잘 떨어지더라』고 했다.
이 한마디에 신을 사려던 손님이 일어서고 신을 열심히 권하던 나는 둘째 녀석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손님은 나가버리고 말았다.
오늘은 글렀구나 생각하며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넌 집에 들어가. 그러고 어제 읽던 책 마저 읽고 독후감 써-』라고 소리질렀다.
항의하는 눈초리를 하고 둘째 녀석이 집으로 갔다.
그런데 웬일일까. 혼자 신문을 들척이고 있으려니까 손님이 하나 둘씩 자꾸 들어온다. 그러고 그날은 다른 날에 비해 많은 신을 팔았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서 귤 한봉지를 샀다. 『거짓을 모르는 나의 귀엽고 순진한 녀석….』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았다.
집에 가니 녀석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 착한 현이놈 때문에 하느님이 감복하신 거야-.』
잠들고 있는 녀석의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해주며 중얼거렸다. 차가운 입술이 닿는 순간 움찔하더니 그대로 꿈속을 더듬는다. 『아들아, 천진하게 자라다오.』
(부산시 동래구 거제3동587 새부산상회) 문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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