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바람개비' 아이디어 … 출력 높은 증기터빈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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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매년 이맘때면 들리던 ‘전력 대란’ 얘기가 올해는 들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올여름 기온이 높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지난해 부품 비리로 대거 멈춰 섰던 원전들이 다시 가동된 것도 한몫했다. 한국형 표준원전은 증기터빈에 연결된 단일 발전기로 100만㎾를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높은 출력의 발전기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1883년 영국 뉴캐슬 인근 한 공장.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귀공자가 조용히 말했다. “증기압을 나누자.” 엔지니어 찰스 파슨스(사진)였다. 그는 대토지를 가진 로시 백작 가문의 셋째 아들이자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우등(수학 졸업시험)으로 졸업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말단 기계공으로 시작해 6년 만에 엔지니어가 됐다.

 파슨스는 새 증기기관 개발을 궁리하던 참이었다. 18세기에 발명된 피스톤식 증기기관은 당시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에디슨의 뉴욕 펄스트리트 발전소는 3층 높이의 증기기관으로 고작 150㎾급 발전기밖에 돌리지 못했다. 증기압을 더 높이면 될 것 같지만 이 경우 기계가 견뎌 내지 못한다.

찰스 파슨스가 1884년 만든 고출력 증기터빈.

 엔지니어들은 수증기를 고속으로 바람개비에 뿜어 발전에 필요한 회전력을 얻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고속 수증기의 직격(直擊)을 견뎌 내는 바람개비를 만들지 못했다.

 파슨스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기관을 강하게 만드는 대신 증기압을 나눠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금속 싸개(casing) 안에 작은 금속 날개들을 다단계로 배열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증기 속도가 떨어져 기계가 압력을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기계를 제작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파슨스는 1884년 10마력 7.5㎾짜리 첫 모델을 내놓을 때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수학 지식과 말단 기계공 경험을 총동원해 이를 극복했다. 기존 기관보다 12배나 빠른 1만8000rpm의 속도를 견디는 베어링과 회전축을 발명했다. 수천 개의 금속 날개를 가지런히 조립할 방법도 고안했다.

 파슨스가 고생 끝에 개량한 증기터빈과 발전기는 국제정세와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 놨다. 1897년 첫 증기터빈 추진 선박 터비나호, 1905년 세계의 해군력 균형을 일거에 뒤흔든 증기터빈 전함 드레드노트호가 개발됐다. 1900년 단일 증기터빈을 이용한 1000㎾ 발전, 1928년 송전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인 3만6000V 발전에 성공했다.

 요즘 일반 선박은 대개 디젤엔진으로 움직인다. 고속 선박과 항공기는 제트엔진 등 가스터빈을 쓴다. 그래도 고출력기관은 여전히 증기터빈의 몫이다. 전 세계 발전량의 80%, 원자력항공모함의 추진기관 전체를 증기터빈이 책임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전력 대란’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130여 년 전 과묵한 ‘도련님 기계공’이 착안한 ‘다단계 바람개비’ 덕분이다.

  이관수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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