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독자 만날 땅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시인 김광규씨는 이야기를 하면서 차츰 목소리에 열기를 띠어간다.
이 「인터뷰」를 하기전 장장 4시간에 걸쳐 시인과 시집에 대해 대화를 가져 탈진한 상태라고 말하던 그가 시를 이야기하자 다시 힘을 내는 것은 시에 대한 정열 때문일 것이다.
『희망이란 낱말을 쓰면 어른들은 픽픽 웃습니다. 어디에 희망이 있느냐는 거지요. 어린아이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말로 여깁니다. 그러나 희망이란 낱말은 우리가 절대로 차지하지 못할 낱말이 아닙니다.』
그의 시『희망』 (문예 중앙 겨울호)의 마지막 구절 「희망은/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가 그 자신의 목소리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서 찾는 목소리라고 강조한다.
희망이란 언어는 닳아버렸지만 이 단어에 새로운 힘과 내용을 부여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김씨는 『희망』을 그가 발표한 『물오리』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북극항로』 (세계 문학 겨울호)와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6·25때 경기도 평택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 곳에서 물오리를 보았다. 그의 시 『물오리』는 자연, 즉 진정한 삶을 향한 비상을 꿈꾼 것이다. 『북극 항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문명에 대한 좌절을 뜻한다. 『희망』은 문명에서 좌절되고 난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희망이란 말도 그렇지만 모든 말의 바른 뜻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신도 구원도 없는 시대에 우리가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봐요.』
그의 시는 일상어에 의한 평이한 진술로 읽기가 쉽다. 난해한 형이상학적 언어를 그는 극 력 피한다.
『산업화로 사회는 분화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 문학을 전공한 사람처럼 시를 해석하고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시인이 독자와 마주칠 수 있는 장소로 나가야합니다.』
이 점은 서정주의 시나 절대시를 피하고 사회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우리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려고 하는 시작 태도와 함께 그가 벌이고 있는 「시의 민주화」 운동을 이해하게 한다.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신문이나 방송이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영국 BBC방송은 시 낭송과 해설 시간을 마련해 고정 시청자 1백만명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 전문지나 동인지에 대한 지원도 많아야할 것이라고.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거쳐 한양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75년 「문학과 지성」에 『유정』 『시론』 2편을 발표하여 느지막하게 「데뷔」했다. <임재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