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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중독과 흡사한 「일확천금」의 유혹|도박-그 「별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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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끗발」을 쫓는 눈들이 번득인다.
속임수와 협잡,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행심, 털린자의 밀고, 피의 보복,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아편과 같은 중독-.
이것이 도박의 세계다.
「카지노」판에 나뒹굴던 「포커」짝이 청년 실업가·연예인·대학생의 손에까지 잡히고 사기노름꾼의 화투짝에 놀아난 주부들은 재산과 남편, 자식을 잃고 끝내 파탄의 수렁에 빠지는 예도 많다.
『인생은 도박』이라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행심은 『땀 흘린 만큼 댓가가 돌아온다』는 건전한 사회 기풍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지금까지 수사 기관에 적발된 각종 도박 사건을 중심으로 도박 세계의 허상과 실상을 벗겨본다.

<실태>
대검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79년 전국 도박 발생 건수는 6천1백65건에 2만3천6백37명이 검거되었다. 이 가운데 여자가 2천3백45명으로 약 10%. 상습 도박꾼 10명 중 l명이 여자라는 셈이다.
80년 상반기 (6월말 현재) 통계는 4천4백81건이 발생, 전년도 같은 기간의 3천9백25건보다 14%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로는 12월∼2월 사이에 전체의 40%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농한기 농촌의 골방 노름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도박범들의 노름 목적은 반 이상이 『돈을 따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으며 나머지는『심심해서』 또는 『재미가 있어서』라고 대답하고 있다. 「프로」들에게 있어서 도박은 생업의 수단이며, 「심심하거나」「재미가 있어」 그 세계에 빠져든 사람들은 바로 「프로」들의 「밥」이 되었던 파산자들로 보면 틀림없다.

<상류층 도박>
서울 후암동 195의 4 예비역 장성 K모씨의 2층 양옥.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집이지만 9개월 사이에 하루 3천만원씩 5억여원의 판돈이 오간 비밀 「포커·아지트」다.
정문 입구엔 영문으로 된 「미 재향군인회」「클럽」 간판과 「국내인 출입 금지·회원 전용」이란 안내문까지 붙어있다.
땅거미가 진 하오 8시. 검은색 「레코드」와 쥐색의 「피아트」 승용차가 10분 간격으로 도착, 「클랙슨」을 누른다. 차에서 내리는 사나이들은 40대 초반의 한국 사람들. 차림새며 기름진 얼굴 등이 회사 중역쯤 되어 보인다.
두리번거리거나 긴장의 빚이라곤 없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의젓하게 들어가는 모습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라도 참석하는 사람들 같다. 집안은 고급 「호텔」을 그대로 줄여 옮겨 놓은 것 같다.
복도와 「바·룸」, 「포커·룸」, 침실·휴게실마다 고급 양탄자와 「소파」가 놓여있고 침실의 벽은 반라의 여체가 「모자이크 된 수입 벽지로 둘러쳐 있다.
밤샘에서 4백∼5백만원쯤 잃거나 땄다고 우울하거나 즐거워하는 표정도 아니다. 현금이 떨어지면 「사인」 하나에 몇백의 「침」이 오간다. 잃은 자는 그저 『오늘「핸디」 (끗발)가 없다』며 양주 한잔 마시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들 세계엔 이런 생활이 끝없이 계속될 테니 내일을 기약하면 된다.
서민들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별 세계다. 이것이 바로 상류계급에서 성행하는 「포커」의 세계다. 「후암동파」의 「하우스」 (개장주 이복원·38·조선 「호텔」「나이트·클럽」 대표) 등은 이 집을 4천만원에 전세 내 비밀 「포커」장을 만들었고 유수한 청년 실업가로 통하는 정덕진씨 (40·유진 개발 대표) 등 30∼40대 돈 많은 명문 2세들이 즐겨 이용했다.
「포커」가 도박으로 나타난 것은 10년 안팎이다. 처음에 외국인이나 유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카드」 놀이가 도박의 형태로 첫 철퇴를 받은게 71년. 소위 『중앙청 고급 공무원관련 역대 「포커」판』이었다.
이들은 고급 「아파트」 개인집 등을 바꿔 돌면서 3개월 사이에 3억여원의 판돈을 굴렸다. 결정적인 제보자는 모 은행 L대리. 첫날 그가 잃은 돈은 겨우 4천원. 본전을 찾겠다는 사람의 본성은 L씨의 전 재산 5백만원을 날리게됐고 끝내 노름빚에 깡패들의 협박을 받게되었다.
언제나 조직 「포커」꾼 사이엔 누구를 따게 하고 누구를 잃게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1급 기술자가 끼게 마련이다.
이들은 돈 많은 사장족, 유한 「마담」 등을 고객으로 물색, 적당히 땄다 잃었다 하면서 종래는 밑바닥까지 깨끗이 앗아가는 「프로」들이다. 지금은 그 세계에서 깨끗이 손을 씻었다는 P씨 (53)는 우리 나라에 속칭 「1급 기술자」가 10명 정도라고 한다. 검찰이 수배중인 가수 이상렬은 거의 1급에 가까운 「기술자」다.
장소를 제공하고 돈을 뜯는 「하우스·커팅」은 도박계의 상습적인 일. 그날 판돈의 8∼10%정도. 개장주들은 이 「하우스·커팅」과 노름밑돈 대주기로 꿩 먹고 알 먹는 실속을 차린다.

<주부 도박>
「포커」만큼 판돈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노름이 마작과 화투.
요즘와선 일부 유한 주부들이 단골 고객이 되고 있다는게 특색이다. 2년 전 서울 성북지 청이 검거한 「똘똘이파」등 9개 조직에 의해 밝혀진 서울의 도박단은 70여개.
서울의 변두리 고급 주택가·기지촌을 중심으로 뿌리를 박고 있다.
도박 조직은 총책임자인 「창고장」과 「전화 당번」인 연락책, 노름판 뒷돈을 대주는 물주인 「꽁지」와 「데라」, 「선수」 (도박꾼)로 구성된다.
창고장은 도박장을 개선하고 「전화 당번」을 통해 꾼을 모은다.
창고장의 수입은 「포커」의 「하우스·커팅」과 같은 「자릿세」. 보통 10%선이다. 「창고장」 밑에는 신임이 두터운 「식모」를 둔다. 「식모」는 도박판에 담배와 「드링크」제·잠 안오는 약 등을 사다주는 「서비스」 담당자. 통금이 지나 「서비스」를 요구하면「드링크」 한병에 3천원, 담배 한갑에 5천원 등 그 역시 꾼 근성을 드러내 수입을 잡는다.
노름판은 한사람이 1백만원 정도를 가져야 낄 수 있는 「큰 장사」와 20만원 정도의 「작은 장사」가 있다. 큰 장사는 한판에 판돈이 2천만∼3천만원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꾼들 사이에선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용주골파」 (두목 박 마담·39·78년 검거)의 3일에 걸친 2억원대 「대회전」(?)을 꼽는다.
도박판에서 화투를 나누어주고 딱지를 파는게 「데라」인데 「카드」의 「딜러」에서 따온 동양화 된 단어. 돈 많은 사람이 걸려들면 어김없이 속임수를 써 돈을 모두 뜯어낸다. 「도리짓고땡이」나 마작의 경우 상대에게 가는 패를 알 수 있도록 화투나 마작패가 만들어졌다는 것.
조풍연씨 (평론가)에 따르면 마작은 l920년대에 상류 사회에 오락으로 번졌고 화투는 한일 합방 이전에 일본 사람들이 갖고 들어와 퍼졌다는 것. 당시에 여인네들의 심심풀이로 애용되었다. 그래서인지 도박 사건 중 화투나 마작 놀음엔 대규모 주부 도박단 사건이 많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양주병과 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남녀가 벌거벗고 부둥켜안은 천연색 음화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방한구석엔 김과 양배추가 든 시장 바구니가 놓여있고…. 78년4월 서울 영등포지청 수사관들이 덮친 10억대 주부 도박단 현장이다.
개장주 N씨 (37·여)는 외제 물건 장수를 통해 돈 많은 집 부인들을 끌어들였다.
다 큰 자녀와 사회 생활에 바쁜 남편, 여유 있는 가정 형편 속에 마음 쏟을데가 없이 심심했던 부인네들은 『잠깐씩만 즐기자』는 유혹에 빠져 마침내 남편 몰래 집문서를 잡히고 이혼까지 당했다. 지난 76년6월, 서울 용산동 현대 「맨션·아파트」 33동 8층에서 가정주부들과 어울려 판돈 50만원짜리 「고·스톱」 화투 놀이를 하던 이명자씨 (당시 34세)는 경찰의 현장 기습을 받자 「베란다」를 타고 옆집으로 달아나려다 실족, 그 자리에서 추락, 사망하기도 했다.
주부 도박의 경우 특징은 서로의 비밀을 위해 『진이 엄마』『뺑코 아줌마』『한남동 아줌마』식의 별명만을 부른다. 흔히 집안에선 생각도 할 수 없는 자유 분방한 노름방 분위기 때문에 한번 화투에 손을 댄 주부들은 쉽사리 빠지질 못하는 것 같다.
도박 주부들은 끗발이 계속 떨어질 땐 일단 자리에서 몰러나 양주나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노름판에서 재수를 불게 해주는 건 음화가 필수의 부적. 눈의 피로를 도색 잡지에서 풀고 재차 노름판에 끼어 든다. 남자보다 여자들의 노름빚 독촉은 더욱 무섭다. 칼부림까지도 갈 것 없이 『남편에게 전화하겠다』는 한마디면 된다. 결혼반지·적금통장·집문서는 이런식으로 날아간다.

<농촌 도박>
겨울철 농한기 때면 「화투 불태우기」「도박 없는 마을 만들기」 등 당국의 「캠페인」이 벌어지지만 농어촌의 도박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농어촌·광산촌 노름의 대종은 화투놀이. 80년 5월 현재 적발된 도박 건수는 경북 8백50건, 경남 6백1건, 강원 3백97건, 전북 2백75건, 충북 2백53건 등 전년도보다 20% 정도가 늘었다.
농어촌 도박이라고 규모가 작은 건 아니다. 소 팔고 논 팔고 산을 판돈이 노름으로 날아간다. 도시의 기업 도박꾼이 겨울이면 농촌으로 몰리는 이유도 제법 큰장이 서기 때문이다.
지난해 7윌 충남 보령군 남포면의 J모씨 (33)는 소 살돈 2백만원을 고스란히 사기 도박꾼들에게 털렸다. 사기 도박꾼들은 미리 표가 나는 화투로 「도리짓고땡이」를 해 J씨 돈을 따먹은 것이다.

<도박과 폭력 조직>
도박꾼을 분류하면 부유층의 퇴폐 놀이와 도박을 생업으로 하는 「프로페셔널」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후암동파」가 대표적인 「케이스」. 대부분 부잣집 둘째 아들들이다. 장남의 경우 가업 계승에 몰두하여 도박계에 뛰어드는 일이 거의 없으나 2남은 부모로부터의 소외감·해방감과 더불어 넉넉한 주머니 사정이 자연 술·여자·도박에 탐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 도박꾼은 좀더 투쟁적이고 타산적이다. 이들에겐 폭력 조직이 자신들의 사업에 필수 요건이다. 신민당 각목 사건으로 수감중인 이석권과 박세호파는 뒤에 「양은이파」와 「서방파」 폭력 조직을 두고 1급 기술자를 고용하는 전문 도박꾼이다.
이들 판에 한번 끼면 알거지가 될 때까지 빠져 나오지 못한다. 어음을 받고 강재로 돈을 빌려주고라도 끝장을 내고 만다. 어음은 물론 폭력조직이 현찰로 받아낸다.
검찰 관계자는 도박 조직은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 조직 전체를 몽땅 잡기가 힘들다고 했다. 더구나 특수 제보가 없으면 검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단순 도박은 거의 자유형이 없고 상습 도박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형벌이 가벼워 도박 근절이 어렵다고 했다.
도박 세계의 직업적인 꾼들 사이엔 묘한 불문율도 있다. 『도박 빚은 아버지 부도보다 먼저 갚는다』는게 바로 그것.
칼잡이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그들 세계에서 『그 친구 「포커·매너」가 나빠』라든가, 『「라이트」 (외상)를 안 갚는 꾼』으로 소문이 나면 꾼들 사회에선 추방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연예인을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한다. 녹화를 위해 기다려야하고 다음 노래부를 차례까지 무대 뒤에서 기다려야하고 인기가 떨어지면 출연 교섭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액수는 적지만 연예인 가운데 꾼이 많은 것은 이래저래 기다리는데 지쳐서라는 설명도 된다. 운전 기사의 노름판도 이와 비슷하다.

<왜 성행하나>
최근 미 시사 주간지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는 「기업화되는 도박」이란 특집에서『 경기 침체가 도박업을 성장시킨다』고 지적했다. 도박이 합법화되어 있던「네바다」 주의에도 최근 「조지아」주 등 몇몇 주에서 도박 업소가 문을 열었고 예산이 쪼들리는 주 정부는 세금 맛에 차차 허가 업소를 늘려주고 있다고 했다. 이 특집은 이어 세계적인 불황·실업군의 증가 등 사회가 불안할수록 「슬로트·머신」 고객은 늘어난다고 밝혔다.
도박은 분명 경기 침체·실업 증가 등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겠다. 한편 검찰은 이번 도박만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 중 일부는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보았으나 경기가 떨어지자 유휴 재산을 도박에 걸었다고 진술,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투기 자본이 도박으로 몰렸다고 진단했다.
김채원 교수 (연세대 의대 정신과)는 『사람은 가정적으로나 경제적 또는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어 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심리적인 미숙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도박과 같은 반사회적 「미숙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결국 성장 과정 중에 가정 교육의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잠재 의식 속에 뿌리 깊어 주위에서 타이르고 제재해도 고쳐지지 앉는다』며 장기적이고 심층 심리학적인 정신 치료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오세철 교수 (연세대·사회심리학)는 『급변하는 사회 현상으로 인한 충격과 무 규범적 상태를 맞아 개인이 이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도박 「섹스」 마약 등에 기울어지게 된다』며 『서구 사회가 광적인「팝·뮤직」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그 부작용을 흡수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불만·충격을 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또 다른 대중 조작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한때 도박에 미쳤던 것은 그의 작품 『도박자』를 통해 알려져 있다. 빚에 쪼들려 건강도 악화되고 신경은 광적인 발작과 절망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던 때였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백 「프랑」의 밑천으로 2천 「프랑」만 따면 식구들과 4개월쯤 넉넉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결국 저는 다 털리고 말았습니다. 제 옷은 물론이고 아내의 마지막 장식품까지 저당 잡혔습니다-처음엔 1백 「프랑」만 잃고 자리를 뜨려 했습니다. 그러나 4천 「프랑」이나 따게 된 것이 저를 망쳐놓았습니다. 좀더 따서 단숨에 모든 걱정거리를 없애고 제 가족의 생활을 편하게 만들겠다는 유혹을 저는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서 손을 뗀 것은 건강의 회복, 그리고 『죄와 벌』 발표 이후 명성이 오르고 돈걱정도 안 하게 된 때문이었다. 경제학자「폴·새뮤얼슨」은『도박은 아무런 가치 창조 없이 개인간에 돈이 이동되는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도박이 성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사행 중독증으로 빈사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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