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3>제72화 비관격의 떠돌이 인생-김소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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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절영도 소년단>
그뒤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 나무토막을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무토막뿐이 아니라 큰배는 헌「타이어」를 여기다 쓴다. 수천t 가는 위락선같은 큰 기선은 뱃전에 직접 담지 않고 부두에 배가 닿을 무렵에 두어 아름이 더 되는 그물로 싼 커다란 공(구)을 줄에 달아 내려 총격을 막도록 한다.
그런 것을 총칭해서 뭐라고 하느냐고 기회있을 때마다 그 방면과 관계있는 이들에게 묻곤했다. 누구는「팬더」라고 하고, 훅은 그저「방현물」이라고 해서 대답들이 일정치 않았다.
어린 시절에 무심코 보아온 이 절굿공이의 기억은 그뒤 오랜 세월을 두고 내 회상속에서 맴돌았다. 일본이란 나라와 내 나라사이에도 이런 절굿공이가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부두와 나룻배 사이에서 스스로 몸을 갈고 깎이어 가는 절굿공이를 누구 하나 치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생활감정이 서로 같지 않고 이해가 서로 맞서는 무 민족사이에 이 방현물없이 어떻게 옳은 제휴가 기대될 것이며, 올바른 교의가 이루어 질 것인가-
절굿공이는 영웅이나 국사일 수는 없다. 닳고 깎여서 마침내는 없어져도 누구 하나 아까와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는 하나 만일에 그런 생애가 있다면 그야말로 더없이 소중하고 보람된 일생이 아니겠는가!-두 민족의 갈등과 마찰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나루터에서 본 그 절굿공이를 하나의 상징처럼 마음에 되새겨 왔다.「오평생」으로 나를 몰아넣은 그 절굿공이-.
이 무렵 「러시아」혁명을 .피해서 어머니가「아라사」에서 돌아왔다.「아라사」로 갈 길잡이를 만나려고 단신 2천리 길을 진남포까지 갔던 내가 그런지 불과 4년 지나 정각 그 어머니가 외가댁 조모님과 같이 삼촌댁으로 왔을 때는 겁을 먹고 뒷문으로 빠져 나와 학교가 있는 산 쪽으로 도망을 쳤다.
호랑이 껍질 같은 털외투를 입고「본넷」을 쓴 어머니가 내「이미지」에 있는 어머니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가르마를 타고 소복차림을 한 어머니였던들 아무리 미련한 나이기로서니 그렇게 도망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때 일을 회상한 어느 글 속에다 쓴 일이 있다. 그 뒤 오랜 세월동안 나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고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카이제르」의 항복으로 끝나고 이어서「벨사이유 강화조약」이니, 「월슨」의「민족 자결주의」니 해서 남쪽나라 작은 섬에까지 시대의 맥박이 전해오게끔 되었다. 국상날인 1919년 3월1일을 기다려 전국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기미 독립만세의 합성은 부산서도 수백명의 투옥자를 내고, 내 외가댁 이모님 한 분도 혼전인 처녀의 몸으로 옥살이를 겪었다.
그런 시대의 열기에 겹쳐서 세계대전(제1차)에 나라를 위해 죽은 소년 명사들의 조국에 바친 충성을 그 당시 창간된 『공제』 같은 잡지에서 읽고는 그냥 배겨내지 못할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게다가 약간 과대망상광인 삼촌의 애국열이 박차가 되어서「부산 절영도 소년단」이란 것이 생겼다.
일요일마다 예배를 마친 교회당을 빌어서 소년 단원이 모이고 때로는 바다 건너 육지에 있는 딴 동네까지 가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단원 70명. 단장은 12세인 나-, 삼촌이 고문격이다.
비록 나이들은 어릴망정 우리도 내 민족, 내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한다한 소년지사들이었다.
때마침 동경 유학생들이 빈『학지광』이란 잡지의「맴버」들이 동경제대의 학생인 김준연씨를 단장으로 강연단을 만들어 부산까지 온 것을 기회로 절창도 소년단이 나루를 건너 초량까지 그 강연을 들으러 갔다. 나이나 학문의 이해 나를 넘어서 모두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의식에 들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 같지만 그런 열기가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그 뒤 30년이 지난 6·25동란 때 임시수도 부산의 어느 극장에서 김준연씨의 강연회가 열렸을 때 우연히도 내가 사회를 말게 되었다. 30년 전의 절영도 소년단 시절을 회고하면서 나는 가슴 부풀었던 그날의 감회를 청중 앞에서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절영도에 단 하나인 사립 왕성학교를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육당 최남선이란 이름을「불쌍한 동무」(프란더즈의 개)라는 책에서 처음 알았다고, 『누구의 죄』같은 탐정소설이며 H·G·「웨일즈」 과학공상소설 (요즘 S·F라고 약칭으로 부르는)「타임머시인」같은 것도『항시기』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을 이 시기에 읽었다.
아무런 순서도 체계도 없는 그런 독서중에서도 어린 가슴에 감명을 새겨준 것이 음빙실 주인 양계초가 쓴『월남 망국사』한 권이다.(몇해 전에야 안 일이지만, 한글로 된『월남 망국사』도 있었다는데 내가 읽은 것은 한문에 토를 단 꽤나 어려운 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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