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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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거 즐겨 본 미국 영화들은 주로 무술이나 액션영화였다. 어릴 때 TV에서 무술영화 방영 예고가 나오면 방송 시간에 맞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보며 빠져들곤 했다. 관람 후에는 방금 등장했던 등장 인물들의 무술 동작을 흉내내며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제법 동작을 잘 따라하는 친구가 있을 경우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을 본명 앞에 붙여 불러주곤 했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들 중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알리, 제트 리 무스타파, 재키 찬 하산, 장클로드 반 담 마호메트, 브루스 리 후세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철부지들이었지만 아마 언젠가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무술은 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터키의 내 또래들에게는 오히려 미국 영화를 통해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모두 미국 출신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이들 중 상당수가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장클로드 반 담은 벨기에 출신이며, 제트 리(리롄제·李?杰 ), 재키 찬(청룽·成?), 브루스 리(리샤오룽·李小龍) 등은 모두 중국인이며,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이외에도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고향은 스페인, ‘더 록’이라는 영화를 본 후 팬이 되었던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그뿐 아니다. 어린 시절에 토요일마다 놓치지 않고 본 미국 드라마 ‘여전사 지나’의 주인공 루시 롤리스는 뉴질랜드 사람이고, ‘글래디에이터’로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은 러셀 크로는 호주 출신이다. 이처럼 할리우드를 주름 잡는 톱스타들 중에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배우들이 넘쳐난다. 할리우드가 지구촌에서 영화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기에 재능있는 배우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그 결과 할리우드는 영화라는 소프트파워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도 지금 국제적으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이를 할리우드에 빗대 ‘하니우드(Haniwood)’라고 부르고 싶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으킨 한국의 성장을 영화산업에 접목시켜서 말이다. 인도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인 ‘볼리우드’처럼 한강과 할리우드의 합성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나는 2005년에 제작된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한국 영화에서 외국인 출연자를 처음 봤다. 물론 한국 내 외국인 배우들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던 이참 씨 아닐까 싶다. TV 드라마 ‘딸부잣집’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후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 의원이 나온 ‘의형제’나 ‘완득이’ 같은 영화들이 외국인 배우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가 출연한 ‘초능력자’와 외국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방가 방가’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하이킥 시리즈’에 출연한 줄리엔 강도 빠질 수 없는 외국인 스타다.

이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외국인 배우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국제화에는 한류를 타고 전세계로 배급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인기가 한몫 했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이라는 인식의 확산은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참여를 북돋고 있다.

그 예로 페이스북에서 나를 팔로우하고 있는 터키의 수많은 한류 팬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느냐고 종종 묻는다. 영화 출연을 알선해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오는 실정이다. 경제발전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지도를 키운 한국이 지금은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지금이 영화처럼 대중에 대한 소구력이 강한 소프트파워를 통해 한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알파고 시나씨 2004년 한국에 유학 와 충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