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 돌파…'명량'에 대한 진중권의 '조금 더 긴 설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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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개봉 18일 만에 역대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명량'은 16일 오전 11시30분 1362만7153명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인 할리우드 SF '아바타'(1362만명·2009)의 기록을 5년 만에 깼다. 역대 최단기간인 18일 만의 결실이다.

8년 동안 한국영화 흥행성적 1위를 지킨 봉준호 감독의 '괴물(1301만명·2006)도 '명량'에게 무릎을 꿇었다. 첫 1000만 관객을 기록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1108만명·2003)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된 '명량'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 사이에서 "실망했다" 의견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수작'과 '졸작' 의견이 갈리고 있다.

13일에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와 영화 칼럼니스트 허지웅이 트위터에서 '명량' 평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자질까지 운운하며 팽팽히 기 싸움을 벌였고, 이 '디스' 전은 진 교수의 사과로 일단락됐다.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허지웅이 자세히 썼다는 글은 아직 못 읽어봤고, 그저 뉴스검색에 이런 기사가 걸리길래 어이가 없어서 한 말. 그의 발언 취지가 왜곡된 거라면, '자질' 운운한 것은 그의 말대로 불필요한 어그로. 미안"이라며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그리고 진중권 교수는 1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명량'에 대한 조금 긴 이야기를 다시 게재했다. 자신이 왜 명량을 졸작이라고 표현했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다음은 진중권 교수의 트위터를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쌈' 구경을 기대했다가 실망들 하신 듯.... 영화 내적 얘기보다는 다들 외적 부분에 관심이 있는 듯. (1) 건전한 애국심론, (2) 486 세대론, 아니면 (3) 흥행비결론, 즉 '저렇게 많이 봤으니 뭔가 있음에 틀림없다'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죠. (1)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주변인물들과의 외적 갈등을 그린 드라마, (2) 1시간이 넘는 해상전투신. '명량'은 후자에 집중하려 한 듯. 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듯하고, 논점은 후자인데....

-사실 내가 이 영화를 개봉날 가서 보며 가장 기대했던 것도 그 부분의 묘사였죠. 12척의 배로 130척을 물리치는 기적에 가까운 승리에 대해 역사적 기록은 매우 빈곤하죠. 바로 그래서 그 부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주기를 기대한 거죠.

-어떻게 12척으로 130척을 물리칠 수 있느냐... 그런 기적도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개연적으로' 보여줬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1) 전략, (2) 지형지물, (3) 무기체제, (3) 선박의 성능, (4) 병사들의 용기 등등...

-그런데 영화를 보고도 특별히 남는 시나리오가 없더군요. 그냥 대장선 혼자서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싸웠더니 이기더라.... 는 정도. 역사물이라면 역사적 기록의 빈 틈들을 상상력으로 메꾸어 상황에 대한 개연적 해석을 제공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해상전투신을 1시간 가량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간 게 미덕이라는 말이 내게는 뜨악하게 들리는 것이고, 더군다나 그런 건 할리우드도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상식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고....

-'활'의 경우 '꽤' 괜찮은 영화라 평한 것은, 명량에 대한 비판이 감독의 역량부족을 지적하는 아니라 말하는 완곡한 방식이자, 동시에 진심도 담긴 표현이었죠. 적어도 내게 '활'은 활이라는 무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었느니까.;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이나 영화의 플롯 중에서 한 에피소드에서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시간이 과도하게 긴 부분은 모두 포르노'라고 말했죠. 꼭 남녀가 벗고 나오지 않아도 모든 영화는 어느 정도 포르노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가령 '진주만'에도 공습장면이 수십 분 넘게 나오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상륙장전이 30분 이상 지속되죠. 사실 모든 영화는 어느 정도 포르노적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부분의 질과 양이죠.

-'명량'에서 저는 그저 왜 놈을 무찌르는 통쾌하고 온갖 효과를 동원하여 장쾌한, 그런 시각적 스펙터클 '이상'을 기대했으니,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겠죠.

-며칠 전 오스트리아 친구가 나한테 "엄청난 프로파간다 영화를 봤다"고. 근데 얘길 들어 보니 "명량.' "12척으로 130척을 이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게 구라가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해 주었죠.

-사실 엄청난 전적이니, 누구라도 믿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승리의 비결을 개연적으로 묘사했다면, 최소한 '엄청난 구라를 동원한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인상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 그리고 관객 천만 넘은 영화라도 트위터에 걍 한 마디로 "수작"이니 "졸작"이니 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저 이 얘기를 했을 뿐인데, 거기에 왜 "건전한 애국심"이 나오며, "486세대 담론"이 나옵니까? 그러니 내게는 이 상황 자체가 거대한 정신병동처럼 보이는 거죠.

-이러한 이유들에서 저는 그만 건전한 애국심을 버리고 "다음 영화는 이런 점을 고려해서 더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가증스런 매국질을 하고야마는 "486세대"의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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