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카르페 디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나이가 나이인지라 인생 2막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기자 이후의 삶이다. 우리 또래의 관심사이고, 다 나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다. 공부를 해라, 하루빨리 박사 학위를 따라는 조언도 많이 듣는다. 워낙 학력 인플레 사회이니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석사 학위 정도로는 웬만한 데 명함도 못 내민다는 얘기다. ‘박사님’이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멋지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엉덩이가 가벼워서 젊은 날에도 못한 공부를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는 공부를 해도 무슨 자격증이나 스펙용 공부 말고 진짜 마음과 영혼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지도 싶다.

 잘나가던 직장을 관두고 뒤늦게 공부에 뛰어든 후배가 있다. 나이 많아서 하는 공부의 즐거움과 그만큼의 고통을 느꼈으리라. 이제 학위를 마무리하는 그는 요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대사가 자주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란 대사다. “타국에서 보낸 지난 몇 년의 시간은 뭐가 되고 싶어 노력했던 시간이기보다 그냥 내가 살 수 있도록 했고,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알게 한 시간”이라고도 했다.

 인생 2모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 맘이 불편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 질문 대부분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뭐가 될 것인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뭐가 되기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데 익숙한 우리다. 대입을 위해 고교 시절을 유예하고, 취업을 위해 대학 생활을 유예하며, 내 집 마련과 자녀 교육을 위해서 30~40대를 유예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생 2모작을 위해 50대를 유예한다? 이건 뭐 노년의 여유를 위해 젊음을 유예하고,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것을 유예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카리브해에서 노후를 즐기던 성공한 부자가 계획 없이 놀고 있는 마을 청년에게 말했다. “여보게 젊은이, 그리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게. 그러면 나처럼 노년에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여흥을 즐기게 될 거야.” 뭐라고? 청년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이런 우리를 위해 며칠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로빈 윌리엄스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이렇게 외친 바 있다.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해라’의 라틴어) 오직 현재만이 우리의 삶이다. 내일 무엇이 되느냐보다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