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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이긴 이색기업(9)회상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색이 물씬한 15평 남짓 되는 사무실, 빛 바랜 족보가 사방을 둘러있다.
도무지 장사 속과는 거리가 먼 듯한 분위기지만 즐비하게 꽂혀있는 1천여 문중의 족보들이 회상사(대표 박홍구·대전시 동구 중동47)30년 전통을 말해준다. 『경영철학이요,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습니다』 깍듯이 고객을 모시고 종업원을 내 가족처럼 여겨온 것이 전부라고 사장 박씨는 겸손하게 말한다.
그래서인지 8명의 부서장 모두가 창업 때부터 동고동락 해왔고 1백여 종업원들 대부분이 30대 후반의 나이들이다.

<1천문 중 족보제작>
「옛것을 회상해서 새것을 창조하자」는 사제아래 지금까지 대동보 3백여문 중, 파보 7백여문 중 등 모두 1천여 문중의 족보를 만들어냈다. 전국의 활판족보제작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관록도 쌓았다.
업종으로 따지자면 인쇄업, 규모로는 중소기업, 특징은 특화산업….이런 식의 기업분석은 아무래도 이 기업을 재는 자로 적당치 않다. 그저 족보 만드는 곳, 우리나라에 숱하게 많은 가계의 기록보존소 같은 곳이다.
어쨋든 올해 같은 불황 속에서도 매출액을 20%나 늘렸고 세은차관을 들여다 시설을 전면 개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가장 고색창연한 일을 하면서도 경영만은 최신식으로 한 것이다.
중소기업 전 업종에서 인쇄업의 가동률이 가장 나쁜데도(80%이상인데가 14·5%에 불과하다)회상사는 「풀」가동으로 밀린 주문에 시간 대기가 바쁘다는 것이다.
족보라는 제품자체도 그렇지만 분명히 여느 기업과는 다른 점이 많다. 세상이 요란하던 호황 때나 다들 큰일났다고 하는 불황을 당해도 박 사장 자신부터가 별 무반응인 듯하다.
70년 이후 어느 해에는 영업실적이 엄청난 신장을 기록, 번 돈으로 좀 현대적인 사업(?)에도 손을 뻗어보라고 주위에서들 여러 차례도 권했지만 족보 만들어서 번 돈은 족보 만드는데 투자해야한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귀한 벽자 직접조각>
족보사업은 「필생의 업」이라는 집념 때문이다.
여간해서 은행 빚 얻어 쓰는 얼 없고 아무리 자금 사정이 어려울때라도 줄 돈은 꼭 현금으로 결제한다.
은행이자 따져 가는 여유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성의껏 족보를 만들겠다는 이색고집이다.
이 인쇄소에는 옥편을 찾아도 잘나오지 않는 생소한 활자들이 많다.
30년 동안 1천여 문중의 족보를 만드는 동안 선대의 휘자(휘자)에 쓰이는 희귀한 벽자들을 만든 것이다.
자모를 직접 조각해서 큰 출판사들에 빌려주기도 하는 이 회사의 귀중한 「노하우」다.
종업원들의 입사경력이 대부분 오래된 것도 여느 인쇄소와 달리 족보인쇄의 오랜 경험과 요령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주문한 족보가 완성되어 찾아갈 때는 「모셔간다」고 표현한다. 바로 단상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책을 잘 운반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족보엔 일자라도 오자가 나면 바로 결함상품이 되기 때문에 교정을 볼 땐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가짐부터 갖춘다. 또 족보위를 넘어 다니는 것도 금기다. 족보는 단순한 상품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성을 쏟아야 한다.

<족보 30년사 준비중>
박 사장은 3년 전 공장 안에 있던 집을 주택가에 따로 옮긴 이후에도 잠은 꼭 공장에서 잔다고 한다.
가장 무서운 적인 불단속을 직접 일일이 챙겨야하고 평생을 바쳐온 활자들과 함께 있어야 잠이 온다는 것이다.
족보 만드는 일 뿐 아니라 더러는 조상 찾는 일도 회상사 사업중의 하나다. 특히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이나 재일 교포들이 선조들의 소재를 물어오기도 한다.
미「하버드」대학에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회상사에서 펴낸 족보들을 모아 수집해 간다.
지난 78년에는 그 동안 발간한 족보들을 모아 족보 25년사 2천 권을 만들어 무료 배부했고 지금은 30년 사를 준비중이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우리민족의 뿌리를 찾자는 것이 이 기업의 대의명분이다. 생전에 족보 전문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 회상사의 꿈이다. <끝><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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