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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의 죽음 그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야구경기에서는 잡기 어렵고 총알 같은 타구가 쉴 틈 없이 날아간다 해서 3루를 「핫·코너」라고 부른다. 때문에 3루수는 항상 온 신경을 타자와 「볼」에 집중한 채 초긴장 상태로 있게 마련이다.
흔히들 신문의 「핫·코너」를 사회면이라고 한다. 봇물처럼 밀려드는 시정잡사가 걸러지고 선택되어 독자를 대하는 생활의 반사경이랄까. 현대인의 일상이 그렇듯 각박하고 타산적인 비리의 사회현상을 지적하다보면 독자의 가슴을 뜨겁게 해 줄 훈훈한 「뉴스」가 아쉬워진다.
세밑 폭설에 마지막 편지를 전하고 돌아가다 실족, 동사한 집배원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닫힌 가슴을 눈뜨게 하는 인정개안의 종소리였다.
3루수의 멋진 「플레이」는 「홈·런」타자 못지 않은 갈채를 받는다. 사회면 기사의 생명, 그것은 『빠를수록 신선하고 자세할수록 감동적』이다. 마감시간 30분을 남기고 체신부에서 들어온 집배원의 순직 소식. 범상한 사망기사로 다루기엔 독자가 용서 못 할 것 같은 직감. 알아주는 사람,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음지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가던 「곰 같은 인생」의 죽음은 고명한 인사들의 강단철학보다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 간곡할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방취재의 손발이 없고 현장신경이 없다. 부산 효주양 유괴범 검거 때 겪었던 주재 기자 없는 「벙어리 가슴」이 재발한다. 현지에 본사기자를 보내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 시간이 없었다.
정확한 사고 경위 등 「신선하고 감동적인 사실」을 전하기엔 너무나 미흡한 여건이 조바심을 일으킨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체신부는 서울과 안면도까지의 거리만큼 본부와 현장의 괴리감을 느끼게 할뿐 별 무소득. 안면도 우체국에 걸어놓은 장거리 전화는 마감 20분이. 되어도 감감무소식이다.
마침 충청 체신청에 걸었던 전화가 제대로 현지에 갔던 사람과 연결이 됐다. 이중·삼중의 간접 취재로 그런대로 「상보」를 낼 수 있었지만 순직 집배원의 사진은 3판 마감시간이 돼서야 겨우 도착했다. 더우기 유가족들의 동정과 주변얘기는 후일담을 취재하기 위해 보낸 본사기자가 돌아와서야 보도하게 됐다. 신문이 해야할 일을 미흡하나마 해냈다는 안도감보다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공무원상을 보았다는 쓰디쓴 뒷맛이 남는다. 불평 없이 자기 직분을 수행하다 어둠 속에 쓰러진 벽지 집배원이 그 하나이고 이 같은 죽음을 극히 사무적으로, 그것도 사고 발생 후 1주일 뒤에야 겨우 상부에 보고하는 「나라의 신경」을 보았다는 개운찮은 뒷맛이다.
「핫·코너」의 「플레이어」는 최선을 다한다해도 날아오는 「볼」을 『알깠을 때』뒤를 받쳐줄 외야수가 없어 항상 불안하다고 말초신경이 마비된 사회면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다. <금창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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