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운동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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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정부의「문예중흥계획」이나 문화예술진흥정책에는 분명 연극의 보호·발전을 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 존폐문제가 근년 되풀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연극계활동의 대종을 이루는 소극장들이 존속할 수 없다면 우리연극도 결과적으로 선망을 잃게 된다.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77년에 문공부가 공연법과「소극장설치 허가기준」을 개 정하여 소극장의 법정시설기준과 건축법을 강력히 적용하려던 때로부터 매년 소극장들은 「존폐」의 기로에서 헤매곤 해 왔다.
객석 2백미만의 소극장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2백 석 이상의 소극장은 건축법과 공연법 이외에 소방법과 위생법 등 갖가지 제약 속에 더욱 골치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78년이래 매년 6월말이 되면 당국의 극적인 유보조처로 거듭 한숨을 돌렸던 소극장들은 이제 81년6월말로 최종 유보된 폐쇄조치를 앞두고 근본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한 원로연극인이 최근「소극장구제에 관한 건의서」를 관계 각 기관에 제출하고 공연법의 개 정으로 소극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호소는 소극장운동의 위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이런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소극장은 7개로 알려져 있다.
현행 공연법에서「공연장」의 개념에는 영화관과 유흥업소무대 그리고 연극전용극장이 일괄하여 포함돼 있는데 규모가 크고 영리성도 강한 영화관과 규모도 영리성도 적은 연극 전용 관을 함께 취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연극계의 견해다.
실제로 구미에선「시네마」와「디어터」가 각기 분리되어 취급되고 있다. 특히 소극장은 대규모의 공연장과도 달라 그 특성은 국가적 문화예술진흥의 차원에서 허가되어야 할 성질의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소극장은 연극이 성장할 수 있는 최소의 기본조건인 것이다. 연극이 본질상 다년간의 수련과 무대경험을 쌓아야만 비로소 예술적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인 점에서 그 수련과정을 담당한 소극장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다. 매년 배출되는 5백여 우리 연극지망생들이 이 소극장을 통해서 수련하고 있는 현실도 외면되어선 안되겠다.
뿐더러 소극장은 수련무대에만 그치지 않는 원초적 존재이유를 갖고 있다.
19세기말에 「유럽」에서「앙드레·앙트완」이「자유극장」을 세우고「소극장운동」을 처음 전개했을 때, 그들의 이념은 예술적 자유를 확립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업주의의 제약을 벗어나서 조그마한 극장에서나마 과장되고 부자연스런 연기를 배격하고 생활의 진실을 무대에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했었다.
그같은 소극장운동이 뒤에 전통적 사실주의 연극을 극복하고 전초연극을 탄생시켜 연극예술의 새 경지를 개척한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같은 세계적 추세 속에서 우리 소극장운동도 1920년대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태동한 이래 그간 한국연극의 다양한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미 70년대에「카페·떼아뜨르」가 공연법과 당국의 세금공세 그리고 사회의 지원부족으로 문을 닫게 된 것에 이어 이제 몇 개 안 되는 소극장들이 문을 담게 된다면 참다운 의미에서 한국연극은 뿌리째 말라죽는 결과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연극진흥을 포함한 문화예술중흥을 늘 다짐해 온 우리 문화예술당국이 이같은 결과를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국이 현재 말썽이 되고 있는「공연법」과 건축법 등 제 규정을 개 정하여 소극장을 폐쇄의 위기에서부터 구하는 조처를 취해 주기를 당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극장들이라고 제 법규를 무시해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여건을 인정하고 합리적 타개책을 찾아야겠다는 뜻에서 이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규제보다는 지원을 앞세워 나가는 행정노력으로 우리 연극예술 진흥의 신기원을 마련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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