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타락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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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17」조치로 국회의 문이 닫히고 모든 국회의원들이 의부회관의 문을 닫던 날, 여의도의사당 앞 도로에는 경남×××호 관광「버스」몇 대가 서 있었다.
「버스」에 탄 관광객들은 동양최대의 위용을 자랑하는 국회의사당을 구경 못하는 안타까움보다는 나타나기로 돼 있던 자기지역 출신의 국회의원과 비서가 보이지 않자 당장 점심걱정이 앞서고 경비조달에 차질이 올까 봐 안절부절 못했다.

<당선돼도 회의에 빠져>
수억 원의 돈을 쓰고 금「배지」를 달았다가 1년만에「공수 거」한 초선의원은 이 광경을 보고 『모든 것이 타락선거에서 연유한 희극적 장면』이라며 이런 풍토에서 민주주의와 의회정치를 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정도와 형태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의 지난 선거 사를 돌이켜볼 때 타락·부정선거는 이제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사회적 병리가 되었으며 이것이 척결되지 않는 한「선거 당국론」은 좀체 씻을 수 없는 개념의 찌꺼기로 남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타락선거가 정치불신을 초래했고 변칙정국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지난 수십 년간 자행되어 온 타락선거의 유형은 △불법선거운동 △부정·불법한 투·개표로 대별되며 구체적 방법에 있어 인간의 모든 지 모가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법선거운동은 매표·흑색선전을 축으로 해서 이루어졌으며 야당은 여당의 「모든 것」이 부정이라고 공격했고 여당은 「아니다」는 대응 적 변명과 야당의 반칙유발습성에 고심해 왔다.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는 자유당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며 점차 수법이 지능화하고 있다는 차이뿐이다.
자유당말기 4대의원 선거 때 전남의 J모씨는 밤중에 운동원을 시켜 돈 봉투를 농가의 싸립 문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개가 짖어 대니까 북어대가리에 참기름을 발라 쥐약을 묻힌 다음 돈 봉투를 던졌다.

<여도 타락상 시인한 정도>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돈 몇 푼에 동네 개가 떼죽음을 당하는 경험을 해야 했으며 후일 그 후보가 당선된 후 이실직고해 후한 보상은 받았으나 두고두고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또 67년 이른바「6·8」부정선거 때는 공공연히「시멘트」가 동네에 기증됐고 여당후보의 자금살포를 통·반장이 하거나 수표·극장 표가 난무했다.
심지어 부산의 어떤 지구에서는 호당 2백∼1천 원의 돈이 뿌려졌었고 충북에서는 비누와 떡을 7개씩(어느 당의 기호가 7번)빠짐없이 돌렸다.
매수행위는 심지어 후보와 조직원에게까지 미쳐 충남의 모 지역에서는 여당후보가 군소 정당후보를 매수해 도중 탈락시킨 예가 있다.
또 경북에서는 야당운동원이 이유 없이 광고료를 들여 신문에 탈당공고를 내 의혹을 샀고 심지어 지역선거관리위원장이 돈을 받고 직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이같은 현상은 후일 상습출마자와 지방정치「브로커」를 만들어 내는 작용을 했다.
당시 신민당이 발표한「6·8부정선거백서」에 의하면 무려 1천38건의 금품제공·매표사레가 있었으며 공화당은 그 선거가 야당주장대로 「전면부정선거」는 아니지만 일부 타락상을 시인할 정도였었다.
「6·8」선거 때는 운동기간이 농번기를 앞둔 행 락 시기여서 부녀자들이 선거 술을 다반사로 받아 마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금전살포와 선심공약은 범행되기 마련. 선거 때면 으레 실천되지 않는 지방사업공약이 만발했는데 「6·8」선거 때는 목포에서 긴급 경제각료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선거에서의 흑색선전은 당 장의 득표를 위한 효과적 도구로 널리 이용됐다.

<관심 끌려고 일부러 범법>
71년 선거 때 어느 지역의 야당후보는 공화당후보의 명함을 넣어 50원 짜리 봉투를 돌린 다음 30분 후『잘못 전달됐다』며 뺏어 왔다가 다시 신민당후보의 이름으로 5백 원 짜리 봉투를 갖다 주어 효과를 얻었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그 후보는 상대방후보가 고무신을 준다고 선전해 놓고 짝짝이를 갖다 주어 불쾌감을 사게 유도했으며 상대방의 이름을 빌어「놀이」에 초대한다고 엉뚱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어 유권자를 허탕치게 하는 수법도 썼다.
투표전날 『후보자가 사퇴했다』, 심지어는『죽었다』는 소문을 낸 사례가 있는가 하면『여당을 안 뽑으면 놓던 다리도 거둬 간다』는 식의 흑색 선전이 있었다.
어떤 야당후보는 운동원으로 하여금「민주전선」을 지고 장터로 가게 해 놓고 자기 패를 시켜 구타한 다음『공화당이다』고 말해 동정심을 유발토록 했다.
야당후보가운데는 일부러 반칙올해 『나를 잡아 가둬라. 그러면 표밭에 누운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나왔다.
『○○○집에는 개도 금이빨을 했다』『누구 집에는 개를 열 마리 키운다더라』는 등 중상 모함이 합동연설회장에서까지 떠들어지기도 했다.
어떤 후보는 여관에 유명한 점쟁이를 투숙시켜 점괘를 봐주는 체해서 자신의 당선운세를 선전하는 방법을 썼다.

<수면제 써 참관인 잠재워>
투표단계에서의 부정은 상대편 참관인을 매수하거나 빼돌려 사전 투표하는 방법과 대리투표가 자주 문제됐다.
이른바「릴레이」식 투표는 제일먼저 한 사람이 위조투표용지를 가지고 투표소에 들어가 투표장에 가짜를 넣고 진짜를 들고 부근에 은밀히 설치한 「지휘부」로 오면 다른 사람이 진짜에 기표한 다음 투표소에 가지고가 자기 투표용지는 가지고 나오고 들고 간 것만 넣는 방법이다. 물론 그 댓 가로 일정액의 돈을 받는다.
상대방 참관인의 참관방해도 큰 몫을 차지했는데 어떤 후보는 야식 때 수면제를 타 상대방 참관인을 모두 곯아떨어지게 하고 무더기 표를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개표과정에서는「피아노」표·빈 대표 등 상대후보의 표를 즉석에서 무효화하는 방법이 알려진 것들이다.
「6·8」선거 후에는 이런 타락상으로 2배66건의 선거소송이 제기됐다.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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