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폐기 먼저냐, 체제보장 먼저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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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25일로 예정된 북.미.중 고위급 회담은 형식상 3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북.미 양자회담의 색채가 짙다. 회담에 중국이 참가한 것이 "다자대화냐 양자대화냐"를 둘러싼 북.미간 타협의 산물인 만큼 중국의 개입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회담의 주요 의제는 북.미간 쟁점인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 폐기와 대북 체제보장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새 핵개발 계획이 불거진 이래 양측이 서로 선(先)조치를 요구하며 줄다리기해온 사안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지원 등의 과감한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밝혀왔고, 북한은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 안보상 우려(핵무기 등)가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강경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필립 리커 국무부 부대변인이 16일 브리핑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 계획의 검증 가능한 영구적 폐기가 미국의 목표라고 밝힌데서 잘 드러난다.

'영구적 폐기'를 언급한 데는 북한의 과거 핵 활동 규명을 뒤로 미룬 클린턴 행정부 때의 제네바 합의와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다는 풀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와 관련해 어느 단계에서 경제지원 등에 나설지를 밝힐 것인가도 주목거리다. 미국이 북한의 핵포기 선언 단계에서 대북 유인책을 구사하면 회담은 탄력이 붙겠지만, 핵폐기 검증을 대북 지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면 난항은 불가피하다.

북한은 미국의 체제 보장이나 핵 폐기 후의 대북 지원 방침을 저울질하면서 핵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이번에 핵문제와 관련해 유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의 경제상황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이 북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고려해 핵과 체제보장.경제지원의 일괄타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첸치천(錢其琛) 전 중국 부총리를 만났을 때 일괄타결로 이미 입장을 정리했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이 핵 관련 상황을 악화시키면 미.중 양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돼 있는 구도도 북한의 유연한 대응 가능성을 높여준다.

대북 체제보장 문제도 난제다. 북한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북.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문서나 서한 형태로밖에 할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미국 외에 중국 등이 포함된 다자 체제보장 형태로 절충이 이뤄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자회담의 확대 문제도 쟁점이다. 미국은 가능한 한 이른 단계에서 한.일 양국이 북핵 해결 구도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북한은 3자회담 성사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배제돼야 한다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의 회담은 그동안 북.미 간에 평행선을 그어온 사안이 많아 점치기가 쉽지 않지만 북한이 판을 깨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서울=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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