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의 자율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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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0년대 말 이후 금융자율화, 민영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논의되어 왔음에도 그동안 실현을 보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개발자금을 정책상의 목표에 맞추어 조달하고 집중투입하기 위한 제도금융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초기개발단계를 지나 경제규모가 확대되고「경제의 흐름」이 정책지표의 지배를 벗어나게 되면서 이른바 관 치 금융의 한계가 노정 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시은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점을 인식하고 금융이 당연히 가야 할 목표를 명확히 선정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조치다.
현재 국내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누적된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며 시은의 민영화도 기왕에 맺어진 매듭을 풀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제도금융은 필연적으로 특수은행과 시은의 업무영역을 모호하게 하여 금융의 중복을 낳게 하고 그로 인해 금융 전반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지시가 강화되기 마련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각종 정책적인 제한이 48종에 이르고 있어 한정된 벌금을 배분하는데도 비효율성과 왜곡이 따름으로써 건전한 국민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즉 정책금융이 일반시은에도 강요되어 사실상 전 여신 액의 55%선에 이르게 하는 등 금융의 경직화를 초래하여 정부 스스로 재정금융정책의 운영에 제약요인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 통화정책이 탄력성을 잃고 경기와 「인플레이션」대책이 무력하게 되고 있다.
자금의 효율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일부 중화학투자, 편중대출, 구제금융 등은 계속해서 대금배분의 모순을 뒤따르게 하고 금융기관의 경영을 소극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 금융의 침체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에 정부가 금융자율화를 단행하고 그 전제조건으로 정책금융의 축소조정, 인사·예산의 결정권 등을 금융기관에 위임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금융자율화·민영화를 기하는데는 여러 가지 정책적 판단이 있어야겠으나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여 금융에의 정책개입 폭을 축소하고 금융제도의 운영은 금융의 독자적인 영역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과 같이 특수은행과 일반시은의 업무상 혼돈을 방지하게 되어 개발정책에 소요되는 정책금융은 특수은행이 담당하고 일반시은은 본연의 상업「베이스」에 의한 경영을 할 수 있다.
금융의 자율화란 일반시은의 경우, 상업「베이스」에 충실한 경영을 뜻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정부는 금융의 자율화에 이은 시은을 민영화할 때 독점대본의 지배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날려지고 있으나 자금운영에 일정한 규정을 두어 대출의 편중을 방지하는 장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요컨대 예상할 수 있는 금융자율화의 부작용은 오늘의 제도금융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에 비추어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된다.
정부가 주장하는 민간주도경제는 금융의 자율화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런 뜻에서 이번에야말로 명실상부한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경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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