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근성」못 버리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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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신성순 특파원】일본에서는 요즈음 김대중 재판을 놓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김대중이 일본인인가」라고 묻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정강현 소진시·29일자「마이니찌」신문독자투고)라는 말이 일본인의 입에서 나올 정도다.
지난달21일「스즈끼」일본수상발언에 이어 28일에는「이또」외상이『김대중을 처형하면 「엔」화 차관을 중단할지도 모른다』고 위협적인 발언을 했고, 29일에는 다시「스즈끼」수상이「아스까따」사회당위원장에게『최후의 최후까지 처형은 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재야에서도 좌익계인 노동조합 총평의회(총평)가 27일 김대중 재판에 합의, 항만하역을「보이코트」하겠다고 선언했고 사회당은 1일 열린 전국대회에서「김대중 구출 긴급결의」를 하는 극성을 보였다.
진작부터 한국문제에 대해 편파적이고 왜곡된 보도로 일관해 온 일본언론은 이번에도 『「스즈끼」수상발언은 내정간섭이 아니다』(27일자「아사히」신문 사설)라는 등 억지논조로 일본정부를 부채질, 한일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일목의 조 야가 가장 가까워야 할 주권국가의 국내재판문제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개입하여 왈가왈부하는 오만한 자세의 바탕에는 식민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지만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인권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일본이 과연 인권문제로 한국에 대해 이처럼 큰소리를 칠 자격이 있는가 라고 자생하는 일본인들의 소리도 크다.
월남패망 후 공산「베트남」을 탈출해 나온 난민들의 수용문제가 제기됐을 때 일본이 보여준 「비인도적인 태도」는 지금도 전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국토가 좁은「스위스」가 2천여 명의 난민을 받아 들인데 비해 일본은 불과 43명을 받아들이고 외면했다.
일본의 비인도적 처사에 대해 당시「뉴스위크」는『일본인은 일본인이외의 사람은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다』고 이기적이고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힌 일본인의「섬나라 근성」을 꼬집었었다.
김대중 재판문제로 일본이 떠들썩하지만 실상을 한꺼 풀 벗겨 보면 특정개인의 인권문제를 놓고 열을 올리는 이들이 60만 재일 교포의 인권문제에는 눈을 감아 버리는 자가당착 적
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김대중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김대중 개인보다는 한국 민에 대한 우월감정과 식민주의 근성을 드러내 보이는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이 진심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려면 먼저 60만 재일 교포가 받고 있는 차별대우부터 시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 교포들이 일본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차별대우의 진상은 공직취임제한, 외국인 등록 법에 의한 공식적인 차별 말고도 취직·입학,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숨이 막힐 정도다.
작년 9월「사이따마껜」(기옥현 상복강시)에서 일어난 임현일 군(12)의 투신자살사건은 한국인이 받고 있는 차별대우의 실상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서독이 일본의 재일 동포와 같은 지위에 있는「실향외국인」(주로 2차 대전 때 강제노동을 위해 징용돼 온 외국인)에 대해 주거선택·소유권·취학·저작권·취업의 자유 등 생활의 모든 부문에서 자국민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일본의 차별대우는 너무 심하다』(평론가)고 일본인 자신이 지적하고 있다.
또 한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최근의 한일간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김대중 재판문제를 앞세운 일본좌익계의 책동과 북괴 및 조총련의 조종을 받는 한민통 등 재일 좌익세력의 노골적인 준 동 때문이라는 점이다.
한민통은 이미 대법원에서 반 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북괴의 재일 위장단체다.
일본에서의 좌익세력의 움직임은 한민통을 비롯, 일본 내 좌익계노조인「총평」, 그리고 한국문제 기독 자 긴급회의, 「카톨릭」정의·평화실현협의회 등 일부 기독교단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단체는 긴밀한 연락을 갖고 김대중 구출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동경의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김대중 재판문제에 관한「세미나」에서 연사로 나온 김대중 구출운동의 지도자「와다하루끼」교수(동경대)는『김대중이 사형되지 않을 경우 지금 벌이고 있는 운동을 그만두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그후에도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일본 내 김대중 구출운동이 결코 인권적인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일본 안에서의 김대중 구출운동은 그 목표가 김대중의 구출이 아니라 김대중문제를 미끼로 한국에 대해 식민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데 있음이 자명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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