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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전남 광주시 백운부락|"우리 붓 안써 본 서예가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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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가 붓끝에 매달려 이곳에서 50년을 지내다보니 이 동네가 붓쟁이 동네가 됐구먼. 이렇게 못살아도 후회는 안해. 조선팔도에서 내로라는 서예가치고 내붓 안쓴이가 어디 있간디….』
전남 광주시 백운동 163 야산 고지대 주택가엔 자칭「붓쟁이」40여호가 모여「붓동네」를 이루고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붓이 바로「진다리 붓」으로 이 동네의 옛이름 진고에서 유래한 것.
이곳의 터줏대감은 문안진교필방의 주인 필장 안종선씨(70)다.
이 동네 다른 집들은 모두 안씨에게서 기술을 배워 분가 독립한 제자들이니 안씨는「진다리 붓」의 시조격이다.
안씨집안의 붓매기는 할아버지­아버지 규일씨(작고)­안씨­장남 명환씨 (32) 등으로 이어지는 4대째 가업.
조선조말 중국을 다녀온 할아버지가 붓매는 기술을 배워 고향인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우산리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양반집안에서 붓매기가 웬말이냐고 동네에서 쫓겨나 아버지 규일씨 대에는 나주군 문평면 북간리에서 숨어서 만들었고 진교에 자리잡은 것은 안씨가 20세때 가출해서였다.
『처음엔 산 위에 천막을 치고 움막 속에서 붓을 맸지….』
안씨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젊은시절 4∼5명의 어린 제자들과 비바람을 맞아가며 굶다시피 생활했다고 어려웠던 때를 회상했다. 지금 사는 집도 방 4개의 10평쯤되는 움막과 다름 없는 가건물. 그러나 안씨는 이 집에서 줄잡아 2백여명의 제자가 기술을 익혀나갔고 7남매를 키울 수 있었다고 대견해했다.
『붓의 생명은 붓끝 (호) 에 있지. 붓끝을 잘보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고「진다리 붓」이 유명해진 것도 호가 좋기 때문이야.』
고희가 됐으나 아직 시력이 좋아 붓 끝은 반드시 안씨 스스로가 만진다. 10년 이상 붓 끝을 만져야 붓쟁이라 할 수 있다며 안씨는 『복동 (51) ·태원(25)·성구(40)』등 이젠 제법 전문가가된 제자들의 이름을 들추며 진다리에서도 10여명은 붓을 잘맨다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붓 값은 1자루에 5천∼3만원으로 크기·재료·생산자에 따라 차이가 난다.
물론 같은 크기·재료라도 안씨가 만든 붓은 20%쯤 비싸다. 그래서 안씨는「진다리 붓」이란 별도 상표를 붙인다.
재료는 주로 흰염소 털로 기술자 1명이 하루 15∼20자루를 맨다. 안씨는 5명의 제자를 두고 줄잡아 한달에 2천5백여 자루를 생산하고 있으며 동네전체로는 한달에 3만 자루쯤을 만들고 있다.
제조과정에서 힘드는 일은 털의 기름빼기와 붓끝 고르기. 먹물이 잘 스며들도록 기름을 빼는데 쌀겨를 태운 재를 털위에 뿌리고 쇠관을 달궈 다림질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붓끝 고르기는 털의 뾰족한 끝부분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각각 길이를 다르게 자르는 기술.
재료로는 주로 흰염소 털이다. 이것도 생후 3개월된 염소의 겨드랑털만 쓰는데 털갈이전인 음력 정월∼3월 사이에 채취한 것이라야 한다.
1마리에서 나오는 양은 1근반쯤으로 값도 못쓰는 털을 섞어 관당 10만원. 겨올 한철에 1년 분을 모두 사들여야하므로 한꺼번에 털 값만 3천만원 이상 들어가는게 큰 부담이다.
『사군자 화필은 개등털이나 돼지털로 만든 것이 좋고 일반화필은 소귓속털이나 여우등털·너구리털로 많이 만들었지. 또 장액이랑 고라니 겨드랑털은 비문 쓰기에 좋고 고양이등털은 석판붓이나 도자기문양붓에 좋다고들 하고 족제비 꼬리털로 붓을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재료 구하기도 힘들고 찾는 사람도 없어….』
안씨는 염소털 붓도 같잘 만들면 어느 것보다 좋은 붓이 된다고 자랑했다.
의재 허백련화백은 생전에 안씨를 곁에 불려놓고 안씨 붓만 주문해 썼으며 남농 허건, 송곡 안규동, 누전 손재성 등도 모두「진다리 붓」의 주요 고객들.
10여년전부터 도시에 서예붐이 일어 다소 형편이 나아졌으나 안씨를, 비롯, 붓동네엔「돈을 번」사람은 아직 없다.
털값이 한꺼번에 목돈이 들어 이들 도시의 필방에서 빌어 쓰고 1년 내내 헐값으로 붓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결국은 필방주인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 주창왕씨(41)등 이들의 한결같은 불평이다.
주씨는「붓쟁이」들이 힘을 합쳐 조합을 만들려고 했지만 필방주인들의 방해로 뜻을 못이루었다고 안타까와했다.
안씨의 진다리붓은 전국 관광민예품 경진대회에서 작년엔 특선, 금년에는 장려상을 받았다. 안씨의 장남 명환씨는 일본에서 몇 번이나 초청장이 왔지만 기술을 일본사람을 위해 쓰기는 싫어서 마다했다.
대신 대만에서 진다리붓 주문이 많아 수출에 주력하기로 했다.
『좋은 붓은 모가 윤기가 많고 올이 가늘어야 하며 붓끝에 끝없는 모(올이 거꾸로 박힌 모)가 없어야하지. 모가 구불구불한 붓은 힘은 좋으나 끌이 벌어지고 잘 안써지는 불량품이야)
안씨는 가난에 쪼들려 자식들을 제대로 못가르친게 가슴에 맺힌다. 못 먹고, 못 입고 허술한 집에 사는 것은 흠이 안되지만 국민학교만 나온 아들을 붓쟁이로 만든 것이 한이다.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도 모두 가난 때문에 붓매는 일을 배운 까닭에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은 이가 없다.
『이젠 붓매는 일도 체계적으로, 학술적으로 전승시켜야 될때가 왔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붓매는 일을 배우러오는 젊은이가 없어져 큰일이야. 죽기 전에 뭇매는 진짜 기술을 남겨놓아야 하는데….』
안씨는 아직까지 한번도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는「손끝의 비법」을 물려줄 제자를 찾고 있었다. <광주〓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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