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목 망언」과「일 총평 생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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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총평의「한국상품 불매 및 대한 수출입 물자 하역 거부 선언」은 최근의 한일관계의 흐름으로 보아 어쩌면 자연스러운 단계일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사건 초기부터 일본 정계, 특히 좌익세력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고 총평은 이들 세력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당·공산당 등 정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총평은 그동안 일관되게 진보·급진적 정치노선을 취해왔고 김대중 문제 등 일본이 관련된 한국 정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쏟아왔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의 이번 선언은 예상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선언 자체보다 그 시기와 방법에 있다고 보겠다.
총평「보이코트」의 원인인 김대중 문제는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인데다 이에 앞서 그것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전혀 타국의 문제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대한 이웃나라 노동조합의 반대「캠페인」은 그것이 여론 형성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행동, 즉 일종의 국제 경제적 제재 형식으로 나올 때 객관적 타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일본 국내문제에선 지극히 진보적인 노선을 걸어왔다고 평가되는 총평이 외국의 문제에 이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 만일 이같은 「보이코트」의 근저에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인식이다.
한국 상품의 불매 운동은 곧 한국 쪽의 반발과 보복조처에 이어질 수 있고 이 경우 일본자신이 받을 경제적 타격도 한국 측 피해에 못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재계에선『이 기회를 고질적인 한일무역 역조를 해소하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스즈끼」수상발언 파동에 곧 이어온 것인 만큼, 또 이같은 형식의「보이코트」는 처음 맞는 것인 만큼 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을 처형하면 대 북괴교류를 확대할 수도 있다는, 외교적 압력의 차원을 벗어난 「스즈끼」수상의 발언이 있은 후 일본 전 「매스컴」이 이에 동의했고 이 문제 거론의 친서를 보내겠다고 「아사히」 신문을 통해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벌어진 총평의 「보이코트」는 일련의 상황들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한일관계를 사상 최악의 정도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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