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흙탕물 줄줄 대변항 "조업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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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은 동해안 멸치의 집산지다. 이곳 멸치는 국내 유통량의 60%를 차지한다. 매년 4~5월 열리는 기장멸치축제에는 전국 관광객이 몰린다. 양식 미역과 다시마도 이 지역 특산품이다. 어민들은 지난해 미역 25억원, 다시마 15억원어치를 전국에 팔았다.

 하지만 대변항 어민들이 요즘 근심에 빠졌다. 대변항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기장읍 연화리)에 오는 10월 완공 예정으로 공사 중인 민간업체의 H골프장(18홀·90만938㎡) 때문이다. 어민들은 “골프장에서 흘러나온 토사로 피해를 보고 있고, 완공 뒤 오·폐수로 어장을 망칠 가능성이 있다”며 골프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대변항 앞바다에서 40년 가까이 다시마를 수확해 온 조선주(61)씨는 지난 5월 한 해 수확량의 25%를 폐기처분했다. 폭우(130㎜)가 내린 지난 5월12일 대변항 일대에 누런 흙탕물이 덮치면서 수확을 앞둔 다시마 12t(시가 14억4000만원)에 진흙이 엉겨붙어 팔 수가 없게 된 때문이다. 흙탕물로 항구에서 멸치털이를 할 수 없게 돼 멸치 조업도 중단됐다. 어민들은 잡아온 일부 생선도 폐기처분해야 했다. 어민들은 골프장 측이 비를 감당하지 못해 빗물을 가둬둔 못의 수문을 열면서 흙탕물이 바다에 쏟아진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가 발생하자 어민들은 골프장의 인허가 문제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어민들은 “조작된 주민 합의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대변항 어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송해용(56) 사무국장은 12일 “2011년 6월 당시 마을 이장과 일부 유지들이 주민 동의도 없이 골프장 건설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원칙대로라면 6개 마을 주민대표 등 12명의 도장이 찍혀야 하지만 합의서에는 7명만 찍혀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또 “골프장 건설에 대한 사전 주민설명회와 환경영향평가 결과 발표도 없이 사업이 추진됐다”며 지난 4일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 부산시에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는 ‘민간과 민간의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답변을 주민에게 보냈다. 골프장을 허가한 부산시도 기장군에 문제해결을 떠넘겼다.

 주민들은 골프장을 상대로 영업중지 가처분 소송을 준비 중이다. 노영준(51) 비상대책위원장은 “골프장이 바다에 미치는 악영향을 명확히 따져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결코 보상금을 많이 받기 위한 소송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골프장 측은 주민들의 내부갈등 탓으로 돌렸다. 골프장 김종욱 대표는 “주민간 갈등으로 합의가 무효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골프장 건설에 법적 하자가 없어 예정대로 개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천서(64·전 국회의원) 한중경제협회장이 골프장 회장을 맡고 있 다.

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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