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북괴 반한 책동 기지로 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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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희 논설위원】사회주의 「인터내셔널」대회는 금년으로 15번째나 열렸지만 한번도 한국 사람들의 관심을 끈적이 없었다. 이 대회에 참석하는 통사당 대표의 출국이나 귀국은 신문의 동정란에도 소개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남북한과 한민통의 대표들이 회의장에 나타나 한국관계 결의안과 한민통의 가입문제를 놓고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대회와는 무관한 북괴 사람들의 「스페인」입국 문제로 한국 대사관과 「스페인」외무성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한국인들끼리의 삼파전이 특히 대회 참석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라는 것이 본시 서구 사회당들의 「놀이터」비슷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열린 「멜리아·카스티아」「호텔」이 「로비」의 주조음이 돌연히 깨진 것은 10일, 「파리」「유네스코」에 나와있는 세 사람의 북괴 대표들이 「프레스·센터」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였다.
한국 대표단 쪽에서는 그들이 기자를 가장하여 「로비」활동을 하기 위해 기자증을 신청하거나 북괴의 다른 사람들의 선발대로 와서 대리로 「프레스·패스」를 신청하는 것이라고 만만하고 긴장했다. 「프레스·센터」의 어떤 책임자는 그들이 「프레스·패스」를 신청한 것이 아니라고만 확인하고 그 이상 언급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북괴는 지난 수년 동안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유럽」이 사회당들에 접근해왔다. 노동당 대외연락 부장 김영남은「프랑스」사회당 대회에까지 참석한 바 있고 이번 대회의 주최국인「스페인」의 사회 노동당 대표단은 북괴의 6차 당 대회에 참석하여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세 북괴인의 등장은 김영남 일행의 「스페인」방문 준비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내 밝혀졌다. 김은 5명의 기자, 2명의 통역, 그리고 다른 수행원 1명을 데리고 「모스크바」에 가서 11월4일 「비자」신청을 했고 그것이 「스페인」외무성에 전달된 것은 11월5일이었다.
그들의 「스페인」입국에 관련된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파리」의 세 북괴인이 「스페인」 적십자 총재의 초청 형식으로 「마드리드」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 중 이동혁이라는 사람(공사)은 김정일과는 김일성 대학의 과우에다가 동독 유학까지 함께 한 김정일 측근으로 알려진 사나이다.
김영남 자신은 「스페인」공산당의 제1서기요, 「유로·커뮤니즘」의 「챔피언」「산티아고·카리요」의 초청을 받고 있었다. 「카리요」는 그때 중공 방문 길에 올라있었으니까 초청는 형식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괴인들의 동정이 한국 대표의 관심의 절반이상을 끌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사회주의「인터내셔널」회의의 결의문 기초 위원회는 일본 사회당 대표가 제안한 한국관계 결의안을 심의했다.
원안에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한국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불안을 공공연히 선동하는 구절로 돼 있었다. 그걸 「아시아」지역 소위원회가 대폭 완화시켜 한국의 국내 사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김대중 사형 선고는 한국 정부가 재고할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는 정도로 바꿨다. 그런 「물타기」작전이 성공한 것은 전 통사당의 김철 대표가 일본 사회당에 대항할 일본 민사당 대표를 소위원회에 참가시키자고 제안하여 받아들여진 결과다.
결의안 기초작업은 그 뒤에도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을 겪었지만 원안의 독소조항은 부활되지 못하고 넘어갔다. 결의안의 한국 부분의 심의에 일본 사회당, 한민통과 북괴는 강력한 합동 작전을 폈다.
결의안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한민통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가입 신청이었다.
지난 7월 「오슬로」에서 집행 위원회가 일렀을 때 한국 대표는 참가하지 못했다.
그 틈에 한민통이 서독의 사민당과 일본 사회당을 앞세워 가입 신청을 냈고 집행 위원회가「마드리드」의 총회의 의제로 넘긴 것이 불씨가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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