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반서구의 대가|「이란」은 고달프다|「바자르간」 이란 국경 초소에서-장두성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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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두성 특파원은 「테헤란」에서 3주간에 걸쳐 「이란」-「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던 중 상황의 급변으로 지난 11일 「테헤란」을 급히 떠났다. 다음 기사는 장 특파원이 「터키」와의 접경 지대인 「바자르간」 「이란」 국경 초소를 통과, 「터키」로 넘어와 본사에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주】
입국할 때는 「이란」사람들 틈에 낀 유일한 외국인이었지만 나올 때는 반대로 모두 외국기자들만 탄 전세 「버스」로 국경 초소 「바자르간」을 통과했다. 일행은 「비자」 연장이 거부되어 사실상 축출 당한 2명의 「캐나다」 기자와 4면의 「홍콩」기자 그리고 「비자」와는 무관하게 출국한 본 기자와 2명의 「멕시코」 기자로 모두 9명이었다.
지난 11일 「테헤란」을 떠난 기자는 이밖에도 「비자」 연장이 거부된 2명의 「터키」 기자와 자의로 떠난 「인도네시아」 기자 1명 등 모두 합쳐 12명이었다. 이에 앞서 다른 여러 기자들도 철수했기 때문에 본 기자가 입국한 시기에 「테헤란」에 왔던 외국 기자의 대부분이 떠나고 「테헤란」에는 장기 체류 기자들과 새로 입국한 약간의 기자들만이 남았다.
자의와 타의가 뒤범벅된 기자들의 대거 출국에 간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9일 밤에 있었던 「캐나다」 기자들에 대한 검문 사건이었다. 이들은 이날 밤 외국 기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는「이란」인들 수명과 함께 있다가 권총을 든 일단의 혁명군에 의해 연행됐다.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연행되어 8시간 동안 심문 받은 후 일부 기재를 압수 당하고 아무런 공식 해명 없이 다음날 새벽에 풀려났다.
뒤이어 서방 신문들에 사진을 제공해 온 한「이란」인 사진 기자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불꺼진 암흑의 새벽에 「테헤란」에 도착했던 기자는 3주일의 취재를 마치고 역시 암흑 속에 휩싸인 시가를 빠져 11일 초저녁에 「테헤란」을 떠났다고 기자가 탄「버스」는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9시, 17시간의 주행 끝에 국경초소에 도착했다.
기자가 「테헤란」에 머문 3주 동안에 현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전쟁하는 나라의 수도라는 낌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평온했었는데 떠나던 주에는 갑자기 전쟁의 여파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야채를 제외한 주요 식품들에 대한 배급제가 실시되고 가정용「가스」가 전면 중단되고 전기 공급도 시간제로 바뀔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전기「히터」와 기름통 및「프로판·가스」통이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미 찾아온 초겨울의 추위 속에서 「테헤란」한국인 상사 직원과 공관원들은 오랫동안 난방이 안돼서 냉기가 감도는 사무실에서 두터운 모직 「스웨터」를 입고 근무하고 있다.
이제 이들은 가족을 철수시켜야 하느냐는 문제를 시급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테헤란」에는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혁명정권 자체에 대한 반발과 겹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반발은 간간히 나타나기 시작한 「호메이니」 「포스터」의 오손에서, 또 「테헤란」시내에 널리 퍼져있는 풍자 섞인 전황 풍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한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일단의 명사들의 야간 전투 중 적의 진지에 포복으로 접근해 갔다. 수류탄 공격이 가능한 지점까지 접근한 이 병사들이 기습 공격을 막 개시하려던 찰나에 뒤에서 따라오던 「물라」(회교 중견 승직자의 칭호)가 갑자기 『「알라」는 위대하고 「호메이니」는 우리의 지도자』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앞에서 포복하던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일제히 혁명이래 제2의 천성처럼 된 이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 순간 그들의 위치가 발각되어 한사람만 남고 전멸했다.
이런 이야기는 정규 군대가 다시 비대해 지면 반혁명 세력으로 등장할 것을 경계해서 개전 초부터 절실히 필요한 정규군의 감화 작업에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회교 지도자들을 비난한 것이다.
「이란」에서는 매일 발표되는 전황보고가 세 갈래로 나오고 있다. 하나는 합동 참모본부에서 나오는 1일「코뮈니케」이고 둘째는 「파스다라」 (혁명군) 본부의 발표이고 세째는 전선에 위치한 주지사의 발표다.
합동 참모 본부의「코뮈니케」는 대개 공군 폭격과「헬리콥터」들의 전과 등 정규군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작전을 위주로 하고 지상권의 전과는「파스다라」와 지방 주지사의 발표가 주로 하고 있다.
지상전에서 아직 정규군이 대거 작전하고 있다는 흔적은 없다. 그러니까 비정규군인 혁명군과 정규군이 적당히 혼성되어 싸우고 있는데 그런 2원 조직을 누가 총괄해서 지휘하느냐는 문제는「테헤란」에서 진행되고 있는 권력 투쟁과 직결되어 있다.
『승리할 때까지 전선을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니·사드르」 대통령이 남부전선에서 왜 부진하냐고 묻는 기자 질문에 대해 「테헤란」에 있는 심리전 용사들 때문』이라고 답변했는데 『심리전 용사』란 전쟁 수행보다 정권 투쟁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일부 회교지도층에 「바니사드르」가 붙인 새 유행어다.「이란」·「이라크」전쟁이 얼마나 오래 계속 될 것인지를 전망하는데는 한가지 난점이 있다. 이 전쟁은 중동지역에 일어난 한 혁명세력을 꺾는다는 분명한 기능을 갖고있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계산이 피차에 모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당사자가 다같이 겪고 있는 자원 고갈 현상이나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전선의 현황을 보면 휴전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나 일부 국토를 잃은 지금 「이란」이 휴전에 응한다는 것은 『「이슬람」혁명에 대한 공격』을 그대로 감수한다는 의미로 「테헤란」의 지도층은 보고 있다.
따라서 그런 식의 휴전은 국제적으로나 국내 정치면에서 혁명 지도부에 중대한 도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역도 진이다. 전쟁이 이런 상태로 장기화할 경우 국내에서 비슷한 도전이 몰려올 가능성이 있다.
석유가 생산된 이래 처음으로 추위에 떨게 될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이란」주민들이 어떤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여론의 변화와 함께 지도부에서는 혁명의 이념적 측면과 실용주의적 측면이 더욱 불꽃 튀기는 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이 충돌을 거친 후「테헤란」에 안정된 정파간의 의견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끝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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