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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기 일 기언 선수권전 도전자 결정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입단한지 7년, 18세 때 이 바둑을 두었다. 이때쯤 나는 6단이 되어 신문기전의 본선에 얼굴을 내밀고 강호들 틈에 끼어 드는 일도 많아졌다. 나름대로 콧대가 높아졌다 할까, 패기만만할 때였다.「사까따」(판전) 임해봉「이시다」(석전) 등 선배들과도 제법 여러번 두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는 어쩐지 조금 가볍게 취급당했고 승부를 다툴 만큼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1974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타이틀」을 언제나 차지할 것인가』-마음속에는 항상 떠나지 않는 욕망이 있었으나 전도는 요원해 탄식하고 있을 때였다고 그때 기적처럼 기회가 왔다. 제22기 일본기원 선수권전이 그것이다. 전년도인 73년에 본선 3회전까지 진출하여 「시드」에는 남아있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회전에「소메야」(염곡)9단을, 2회전에「가마」(가전극사) 9단을 연파했다. 3회전. 상대가 누구인가를 보니 당시 천하무적의「이시다」9단이 아닌가.
그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싸울 의욕도 나지 않았다.「무심」하게 반상만 내려다 보며 두었다. 그러자 길이 열려서 이기고 말았다. 이어서 준결승은 이번 명인전에서 이긴 「기따니」(목곡실) 일문의 선두주자 「오오따께」 .
일단 둔 바둑은 멈추지 않는다. 대 선배「오오따께」를 반집 차이로 이겼다.
마침내 결승전이 되었다. 상대는 임해봉 9단이었다. 보통 때는 온후한 임 선배가 바둑판 앞에 앉자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분명 무섭다. 하지만『「이시다」「오오따께」를 물리친 내가 아닌가』하며 임 선배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네모꼴의 바둑판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당시 이연성(이연성) 포석을 즐겼다. 기동력이 풍부한 이 화점 포석은 당시 나의 젊은 패기에도 맞아 들어간 것이었다.
백22는 흑집이 커짐을 미연에 막은 것. 돌의 흐름이다. 흑 23은 필연. 흑 25는「프로」바둑을 두는 사람의 괴로움이 단적으로 표현된 곳. 우변 쪽으로 협공을 할 수도 있으나 일방가(일방가)가 되어 버린다.
백32 침입에는 두려움을 느꼈다. 41까지 진행돼 귀가 부서졌다. 백44가 적시타여서 어쩔수 없다. 대신 43을 두게 되어 그런대로 괜찮았다. 백44는 의외 흑55까지 좌변이 안정되어 조금 앞섰다고 생각했다. 흑 57은 즐거운 마음이 지나쳐 가볍게 둔 것 같다. 58자리에 두어 좌중간에 있는 축머리를 따게 했으면 쉽게 들수 있는 바둑이었다. 백78이 승부수. 실리를 크게 하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생각하다 강수로 나와 흑79로 하변에 있는 한점을 크게 공격하기로 했다. 백은 78로 도주했다. 이때부터 중앙에서 백대마를 잡으려는 대접전이 벌어졌다. 백l32가 되어 일단락된 반장을 바라보니 백의 본대는 흑의 진중을 돌파했지만 군데군데 사자와 낙오자를 남겨 두었다. 흑133부터 종반.
형세가 미세했지만 선수를 잡고 있었다. 이겼다고 생각한 것은 141을 둔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큰 변함없이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흑 4집 반승.
그리하여 나는 제22기 일본 기원선수권 전 도전자가 되었다. 일본에 온지 12년만이었다. 그날 밤 나는 깊은 감회에 젖었다.
내가 처음 일본에 올때 어머니는 떠나지 않으려는 나를 여러 가지로 달랬다.『일본에 가면 하늘을 날고 땅 밑을 달리는 전차가 있다. 그리고 이것말고도 여러 가지 구경거리가 정말 많단다.』
나는 어린 마음에 이말을 듣고 신기한 것을 구경하겠다는 마음이 생겨 눈물을 보이지 않고 부모 곁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11세 때 초단이 되고 그후로 매년 승단하여 6단으로 일본기계 정상의 하나인 일본 기원 선수권「타이틀」을 눈앞에 두게된 것이다.
「고난」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이겨왔다. 어릴 때는 너무 고독하여 고양이·개를 친구 삼았다. 사춘기의 방황도 없다할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을 참아내고 나는 처음으로 대가들과 싸워 정상을 다투는 있는 입장이 된 것이다.
일본 기원 선수권자는「사까마」9단이었다. 60∼65년 사이 일 일본기계를 휩쓸고 잠시 침체했다가 다시 최강자로 등장한 일본 바둑계의 최정상. 그와 정상을 놓고 싸운다고 생각하니 투지가 불타 올랐다.
※212·218·224는 176의 곳, 209·215·221은 177, 226은 27의 곳, 227은 176에 이음, 230은 204, 231은 168의 곳, 232는 27의 곳 이음.<계속><정리=김두겸 동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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