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의 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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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엔나·필」을 본고장에선「비엔나·필 하모니카」라고 한다.「베를린·필」, 「뉴욕· 필」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의 하나. 이들의 수준을 점수로 매길 수는 없지만「비엔나·필」의 경우는 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전통에 충실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비엔나」는「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고향. 바로「클래식」의 고향이라고 해도 좋을 음악의 도시이다. 「비엔나·필」이 창단된지는 벌써 1세기반이나 된다.「나플레옹」전쟁이 끝나고 서구의 낭만주의가 극치를 이루었을 무렵인 1842년「오토·니콜라이」가 창립했다. 「비엔나」의 음악적 향취를 그대로 지니고 탄생한 정통 교향악단인 것이다.
벌써 단원 선택부터 엄격하다.「비엔나」출신으로「비엔나」에서 음악교육을 받은「오키스트러·멤버」일 것을 첫째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부자, 형제지간인 경우도 많다. 가히 이들의 고고성이랄까. 자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대우도 좋다. 단원은 고급 공무적의 신분이며, 지휘자는 장관 수준을 훨씬 넘는 급료를 받는다. 「비엔나」의 음악적 상징으로서의 대우를 깍듯이 받는 셈이다. 이번 초동 우리나라를 방문할「비엔나·필」은「로린·마젤」을 객원 지휘자로 초빙했다. 상임지휘자인 「클라우디오·아바도」는 지난 73년 이미 서울 연주를 지휘한 바 있었다.
오히려 유명도로는「마젤」쪽이 더 친숙하다.「레코드」로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것이다. 1930년「파리」의 근교에서 태어나, 지금은 초로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부친은 유대계「러시아」인, 모친은「헝가리」와「러시아」의 ??혈. 그의 가계엔 예술가가 많아 증조부는「러시아」황제의 취태악대 제일 지휘자, 부친은 배우였다. 「마젤」이 태어나자 일가는 미국으로 이민,「피츠버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마젤」은 기억력이 비상해 네 살 때 벌써 절대 음감을 알았고「피아노」와「바이얼린」 의「레슨」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대부분의 악보를 외고 있다고 한다. 그 보다는 8때「아이다호」의 대학「오키스트러」에서「슈베르트」의『미완성』을 지휘한「에피소드」가 더 유명하다. 당세의 고명한 비평가인「울린·다운즈」는 그를 서슴없이『신장』이라고 했었다.
9세 때엔 「뉴욕」세계 박람회에 출연한「오키스트러」를, 20세 때엔 NBC교향악단을 객연, 역시 이름을 날렸다.
20여년 전「유진·오먼디」가「런던」의 기자회견에서「아바도」,「마젤」,「오자와·세이지」를 극상의 젊은 지휘자로 꼽은 것도 인상적이었다.「마젤」은 그 무렵「바이로이드」 음악제에서『「니벨룽겐」의 반지』전 4부를 지휘, 그의 경력에 한 절정을 기록했었다. 이번 서울 연주에선 역시「슈베르트」의『미완성』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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