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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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눈엔 꼭 면접시험 같다. 비록 연단에는 서있지만 두 담당자는 긴장과 초조의 빛이 역연하다. 「카터」는 입술이 타는지, 연신 혀를 감추지 못한다.
질문자는 기자들, 채점자는 바로 국민들. 29일 「카터」와 「리건」의 TV토론을 본 미국국민은 무려 l억2천만명 이라고 전국민이 들여다본 셈이다. 그 채점 결과는 기준에 따라 각각이지만 대체로 「리건」의 점수가 더 높은 것 같다. 이 토론회를 주관한 미국여성유권자연맹의 비공식번사위가 채점한 것도 역시 「리건」이 앞섰다.「복싱」으로 치면「리건」이 판정승이지만, 「카터」쪽은 승복을 안 한다. 「복싱」과는 달리 도전자가 으례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기 「매너」로 보면, 비록 「글러브」는 끼지 않았지만 서로가 난타를 벌여 승패를 가리기 어렵다. 관전자의 흥미를 유감없이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나 만점일까.
「카터」쪽에서도 현직 대통령치고는 별로 점잖지 않은 표현들을 했다. 상대의 발언에「리디큘리스」(웃긴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격으로 보아 수준이 낮은 경멸투의 말이다.
「리건」은 「제스처」며 여유의 면에선 과연 배우다운 극적 효과와 노당미를 보여주었지만, 말투는 못지 않게 때때로 품위에 손상을 주었다.
「카터」가「리건」의 지사 시절에 증세를 단행했던 사례를 제시하며 그의 정세정책을 공격하자, 「리건」은「디스로션」(왜곡)이라고 응수했다. 상대가 같은 후보일 망정, 현직 대통령인데 「디스토션」은 파격적인 표현이다. 더구나 「카터」를 빗대놓고 「돌팔이 의사」에 비유한 대목도 예의롭지 못해 보였다.
양자의 분장도 인상적이다. 「리건」은 목 주름살을 하나도 감추지 않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그 주름살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런 것을 모를리 없지만「리건」은 아무튼 「출연」에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카터」쪽은 「와이셔츠」의 깃을 잔득 끌어올려 노티를 보이지 않게 하는 복장인 것 같았다.
거기다 초반엔 표정마저 풀리지 않아 그 특유의 「스마일」까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바로 TV토론의 효시였던 l960년의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 때도 닉슨은 그런 분장 때문에 실점했었다.
미국의 대통령, 아니 「폴리비젼」(TV정치) 시대의 정치인은 머리 속의 생각 못지 않게 「스타일」이 중요한 요건인 것 같다. 외양이나「제스쳐」며 「탤런트」와 같은 기질이 모두 대통령의 조건으로 채점되는 것이다. 정열이나 책임감·추진력 등을 그 조건으로 꼽았던 「막스·베버」의 기준은 이젠 고전적인 정치인의 격에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흥미 있는 것은 미국의 정치 「스타일」이다. 그 평가는 차치하고 미국이란 나라는 재미있는 나라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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