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행들 부정한 돈은 "사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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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정한 돈은 사절합니다』-.
돈의 청탁을 가리지 않고 예금을 받고 예금주의 비밀보장을 신성불가침의 의무(?)처럼 여겨온 「유럽」의 은행들도 앞으로는 「더러운 돈」은 외면할 것 같다.
동구를 제외한 서구 21개국의 모임인 「구주회의」가 최근 범죄성 금품의 은행예치를 원천적으로 봉쇄,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각종 범죄를 최대한 막아 보기로 결정한 때문이다.
「스위스」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대체로 「유럽」의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예금되는 자금의 출처를 따지지 않고 예금주에 관한 모든 정보를 대외비로 해왔다.
때문에 자금출처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떳떳지 못한 인사들이나 은행「갱」·유괴범 등 각종 범죄자들이 「유럽」은행들을 부정한 재산이나 강탈한 금품·몸값·장물 등의 가장 안전한 도피처로 이용해왔다.
대부분의 범죄성 금품들은 이들 은행에 예치돼 한동안 수사 당국의 추적을 벗어난 다음 수사의 눈길이 뜸할 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유통되는 것이 보통이다. 범죄성 금품의 안전한 도피와 유통이 얼마든지 보장된다면 이 같은 종류의 범죄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는 것. 구주회의가 범죄성 금품의 도피 및 유통을 강력히 단속하기 위해 회원국 은행들의 협조를 요청키로 한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구주회의가 현재 검토하고 있는 법죄성 금품의 은행예치 봉쇄 방안은 ▲예금자는 누구나 신분증을 제시할 것 ▲은행직원은 제시된 신분증을 완벽한 방법으로 확인할 것 ▲일정금액이상을 예금주가 인출할 때는 신분확인을 더욱 철저히 할 것 ▲은행금고는 장기간 은행과 거래했던 믿을만한 고객에게만 대여할 것 ▲금고의 잠시 대여는 피할 것 ▲거액 인출 때는 지폐번호를 기록해 둘 것 등이다. 「유럽」은행을 제외한 다른 나라 은행들에서는 이미 실시중인 기초적이고 평범한 업무에 불과하나 자금출처를 캐지 않았던 「유럽」은행들로서는 큰 변혁이 아닐 수 없다.
범죄인들이 신분이 확실한 다른 사람을 내세워 범죄성 금품을 예치할 경우 대책이 없다든가, 은행창구 직원들이 얼마나 이 같은 일에 성실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 문제지만 구주회의는 은행원에 대한 치밀한 직업교육으로 이를 극복할 생각이다.
「유럽」은행들이 구주회의의 결정에 응해 범죄성 금품의 예치봉쇄에 적극 협조한다면 범죄인들은 더 이상 이 은행들을 안전한 피난처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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