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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새벽 두시, 내 감성의 골든타임에 생긴 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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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27면

소련 출신의 소프라노 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1926~2012). 1952년부터 볼쇼이 극장에서 활약하다 74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내다. [음악춘추]

이제껏 펴낸 일곱 권의 책 제목을 모두 직접 정했다. 제목은 단순한 호객 수단이 아니라 내용의 집약이라고 생각한다. 첫 책부터 출판사와 옥신각신이 있었다. 시집에 이은 첫 번째 산문집 제목을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로 정했더니 주위에서 한결같이 반대했다. 뭐 그런 유치한 책제목이 있냐는 것이다. 꽤나 시달렸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 정말로 삶이 괴로웠고 그래서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중앙SUNDAY에 연재 중인 음악칼럼을 재구성해서 새로 책을 펴냈다. 이번에도 제목 때문에 사달이 났다. 『음악산책』 『클래식 길잡이』 등등 책 성격을 명확히 하는 모범적인 제목도 많건만 왜 그리 이상스럽고 청소년물 같은 제목을 내세우느냐고. 출판사 사장, 주간, 편집담당자를 일일이 설득하고 통사정하다시피해서 뜻을 관철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신간 제목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작은 사진)다.

새벽 두시의 전율이 있다. 음악 속에서 허우적거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낮의 열기와 저녁의 한가로움을 다 보낸 깊은 밤, 다음날 일과가 비어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 때 간혹 찾아오는 미칠 것 같은 순간을. 그 시간이 새벽 두세 시쯤이다. 랭스턴 휴즈는 ‘할렘강 환상곡’이라는 시에서 새벽 두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새벽 두시에 홀로 강으로 내려가 본 일이 있는가/강가에 앉아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일이 있는가/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신이여 축복하소서/연인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그 여자 태어나지 말았었기를 바란 일이 있는가/할렘강 나들이, 새벽 두시, 한밤중, 나 홀로/하느님, 나 죽고만 싶어/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서운해 할 사람조차 없는 것이 억울해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 옛 여자 아예 태어나지도 말았었기를 간구했던 순간은 또 얼마나. 새벽 두시는 그런 시간이다. 랭스턴 휴즈가 ‘하느님, 나 죽고만 싶어’라면서 강가를 서성일 때 한 사내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심정으로 클래식 음악의 숲을 배회했다. 새벽 두시쯤에 느끼는 음악적 전율은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팽팽한 끈과 같다. 그 끈에 대롱대롱 매달려 외치는 소리는 ‘살려줘’이면서 동시에 ‘죽여줘’이기도 하다. 새벽녘 홀로 음악적 감동에 부르르 몸이 떨릴 때 속으로 외치듯 터져 나온 소리가 이것이다. 아, 이 음악에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런 감회를 전하고 싶어 곡진히 두런거린 것이 이번 책의 내용이다. 그런데 꿀꿀하다. 요즘 세상에 특별한 소수 마니아들 말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 가져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뒷방 곰방대 노인네들 몫으로나 알았던 한국의 문화유산을 범국민적 답사 열기로 몰아넣었던 유홍준 구라빨의 기적을 닮고도 싶었으나 어찌 감히…

발 디뎌 나갈수록 심산유곡이 클래식 음악이다. 거기 형언할 수 없는 자취들이 끝도 없는 비경으로 펼쳐진다. 지금 따뜻하고 원만한 성품과 연주로 존경 받았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듣고 있는 중이다. 야샤 하이페츠와 더불어 바이올린 연주사의 한 시대를 양분한 대가라 언급이 새삼스러울 법 한데 간밤에 놀러온 사진기자 최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제 앞집 사람이, 내일 뒷집 친구가 처형당하는 하루하루라면 그 삶이 어떠했겠는가.

오이스트라흐는 살벌한 스탈린 시대를 살았다. 그가 살던 동네의 이웃 모두가 이런저런 사유로 심야에 사라졌다고 한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내 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의 『갈리나 자서전』에 나오는 증언이다. 오이스트라흐의 섬세하고 포근한 연주가 실은 언제 갑자기 닥칠지 모를 죽음의 공포 앞에서 행해진 것이다. 지금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흐르는 중인데 저토록 몽환적이고 화려한 색채감의 선율이 이전과 사뭇 다르게 들린다. 혹시 공포를 억눌렀을 때의 반응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두서없는 하소연처럼 들리기도 하고.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첫째, 꽂아두고 읽지 못한 『갈리나 자서전』을 독파해야겠다. 둘째, 당분간 오이스트라흐 연주들을 한 바퀴 순례해야겠다. 셋째, 아, 너무나 독특한 시마노프스키의 음악. 그의 교향곡들을 다 들어보고 싶다. 벌써 입추가 지났는데 이 세 가지만으로도 가을맞이 밤 시간이 꽉 차겠구나.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과제는 실행하고 싶고…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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