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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겨울왕국 … 외뿔 돌고래떼가 우릴 반겼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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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3만원짜리 잠자리가 1인용 텐트다. 더구나 먹거리는 파스타와 샐러드뿐이고, 샤워는커녕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그럼에도 여행자들은 이 불편함을 기꺼이 만끽한다. 왜? 그곳은 바로 북극이기 때문이다.

서울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한 지난 6월, 캐나다 북극에 다녀왔다. 위도 72.5도 동쪽 최북단에 있는 ‘플로 에지((Floe Edge)’다.

그린란드와 마주한 바일롯(Bylot) 섬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이곳은 알래스카·옐로나이프 등 다른 북극권에 비하면 관광객들에게 덜 알려진 오지에 가깝다. 그런만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최고의 생태계를 자랑한다.

북극 여우와 순록 등 7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거니와, 이누이트족이 사냥하기에 최고로 꼽는 지역이기도 하다.

북극곰의 50%가 여기서 살고 있다.

초여름이라지만 플로 에지는 온통 하얀 하늘과 하얀 땅이 경계를 잃은 겨울왕국 그 자체였다.

허허벌판 빙하 캠핑은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 무엇보다 세상의 끝에 있다는 감동을 만끽한 최고의 순간이었다.

어딘가 고독한 천국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곳, 북극을 두고 하는 얘기일 터다.

야영지까지 전동썰매로 세시간 … 텐트 1박에 63만원

목적지인 바일롯 섬에 가기 위해선 일단 이웃한 바핀(Baffin) 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이누이트족의 자치 마을인 폰드 인렛(Pond Inlet)이 관문이다. 이곳엔 공항이 있기도 하거니와 관광객을 위한 호텔도 갖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야영을 시작한다.

드디어 첫날. 플로 에지에 가기 위해 스쿠터 썰매에 올랐다. 동화 속에서 보던 개썰매를 은근 기대했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이누이트족의 전통 나무썰매인 ‘카모틱’에 전동장치를 더한 스쿠터 썰매였다. 캠핑을 위한 많은 짐도 짐이지만 도착지까지 65km를 내달리기에는 이것이 현실적 대안이란다.

한데 달리다보니 이상했다. 다 같은 눈밭인데 썰매는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표면은 얼어 있지만 아래는 슬러시처럼 녹아 있는 얼음 바닥을 피해 다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가이드 중 이누이트족의 칼루 일라이자(70)가 앞장을 섰다. 유목 생활을 하다 1962년부터 정착 생활을 해 왔다는 그에게 비결을 물으니 “그저 평생의 감”이라고만 하고 웃었다. 그러면서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도 북극성을 보고 집의 위치를 찾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식이 경험을 이기지 못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잠시 쉬어가는 시간. 그의 ‘강의’가 이어졌다. 눈 위에 지름 1m쯤 되는 물웅덩이를 가리키며 “북극곰이 바다사자를 잡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기포가 뽀르르 생기면 물 밑에서 그것이 숨쉬고 있다는 증거지요. 물 속으로 얼굴을 넣거나 사자가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가 단번에 낚아챈답니다.”

사람의 사냥법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다큐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벌어진다니, 새삼 북극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멀리서 보면 빛깔 오묘한 빙산 … 1만년 전 얼음으로 갈증 해결

세 시간 달려 바핀 해협과 맞닿은 지점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끝 중의 끝이다. 이 바다를 건너면 그린란드다. 거기서 불과 100m 떨어진 안쪽 지점에 눈밭에 점을 찍듯 일렬로 설치된 텐트가 보였다.

왜 꼭 여기일까 싶었는데 답은 이내 눈으로, 귀로 감지됐다. 바다 조류들이다. 큰부리 바다오리, 호사북방오리, 참솜깃오리 등 북극에서 주로 서식한다는 새들이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들이 사라질 무렵 바다에서는 바다사자의 울음이 들렸다. “히이~히이~”. 수심 7m 아래에 설치한 확성 마이크폰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작은 사이렌처럼 설원의 정적을 깼다. 어떤 기계음으로도 만들 수 없는 박자와 음색. 그 소리의 신비가 오감을 집중시킨다. 다음에는 또 뭐가 나타나려나 싶었는데, 때맞춰 인솔자가 뜨끔한 소리를 했다. “북극에서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어요.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빙산을 보러 가는 길이 이를 증명했다. 예기치 않은 여행의 하이라이트, 일각돌고래의 출현이다. 표범처럼 거무튀튀한 가죽을 지닌 것이 특징인 이 고래는 북극권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희귀 동물 중 하나다. 수놈에게는 뿔처럼 보이는 긴 앞니가 있는데, 길이가 무려 4~6m나 된다. 약 7만5000여 마리가 존재하는데 먹이와 서식 조건이 까다로워 기후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그 희귀성 때문에 한때 영국에선 같은 무게의 금보다 훨씬 값어치가 높았다고 한다.

선발대처럼 보이는 한 두 마리가 튀어 오르는 뒤에는 2~3마리가 짝을 지었다. 이렇게 100여 마리가 연달아 등장했다. “꾸르륵” 하는 듯한 울림도 함께 들리는데, 먹이를 충분히 먹고 내는 만족감의 표시다.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된 ‘돌고래쇼’가 잠잠해 질 무렵, 인솔자 중 누군가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누이트족의 전설이다. “옛날 한 여인이 작살로 일각돌고래를 맞추려다 작살에 연결된 밧줄이 허리에 감겼대요. 여인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자신도 일각돌고래로 변했답니다. 긴 앞니 역시 여인의 머리카락이 꼬인 형상이래요.”

감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빙산을 앞에 두고 다시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러댈 수 밖에 없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 그 자체다. 눈짐작만으로도 보이는 규모만 가로 80m, 세로 20m. 그런데 전체로 보면 10분의1 수준이란다.

규모도 경이롭지만 에메랄드빛 색깔이 눈을 뗄 수 없게 오묘하다. 햇빛 중 파장이 짧은 푸른 빛 계열이 얼음 깊숙히 흡수되지 못하고 표면에서 쉽게 산란되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 보면 분명 투명한데 멀리서 보면 색깔을 드러내는 기이함이다.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자니 누군가 “한 번 먹어보라”고 부추겼다. 스틱을 내리쳐 맛보는 얼음-. 바닷물이지만 7000~1만 년이나 됐기에 짠 기운 없이 그저 차디찬 생수 같았다. 실제 야영을 위한 식수를 여기서 얻는다고 한다.

“언제 북극곰 나타날지 몰라요” … 인솔자가 불침번

배꼽 시계가 저녁때를 알리건만 여전히 하늘은 한낮 같았다. 8월 초까지 여름 내내 24시간 어둠이 없는 북극의 백야다. 오후 9시가 넘어 파스타와 샐러드로 끼니를 마친 뒤에도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페이스북이나 메일 체크를 할 수 없으니 허전하기 그지 없다. 자연스레 거실 역할을 하는 대형 텐트에 일행 10여 명이 옹기종기 둘러 앉았다.

자정이 되면서 하나둘씩 텐트 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잠시 인솔자의 공지가 들려온다. “저희가 불침번을 설 거예요. 언제 북극곰이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텐트에 불을 켜두고 지켜볼 겁니다.”

겁먹지 말라면서, 곰들은 우리를 냄새 나는 무언가로 알고 다가올 뿐이라고도 한다. 콜라 광고에서 보던 북극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 속에 두터운 점퍼를 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정작 섬을 누비며 북극곰을 찾아다녔건만 실패였다. 성공 가능성이 70~80%의 확률이라는 데 행운이 안 따랐다.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북극곰의 발자국을 발견한 게 그나마 수확이다. 중간 크기의 어미와 아기곰이 함께 움직인 흔적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위로의 한 마디를 던진다. “이번에 못 봤으니 여기 다시 올 이유가 생기네요.”

폰드 인렛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닷가에 잠시 멈춰 섰다. 피를 흥건히 흘린 채 놓여 있는 흰고래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밤 아이의 목소리와 총성이 울렸다는 일행의 얘기가 들려 왔다. 아마도 이누이트 가족이 사냥을 하고 간 흔적이리라. 남다른 것이 있다면 가죽과 등뼈 주변의 고기·지방 부위만을 가져갔다는 사실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북극곰이 먹으라고 남겨둔 것”이라 했다.

순간 북극의 아름다움과 장엄함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철학이 더없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먹이사슬이라는 냉혹한 생태계 앞에서 서로가 공존하는 법을 지켜 가는 그들 앞에서 문명과 문화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게 무슨 의미일까. 여행은 다름을 이해하는 기회라는 말이 새삼 생각났다.

플로 에지 가려면… 투어의 시작과 끝은 폰드 인렛이다. 여기에 가려면 캐나다 오타와에서 비행기를 타고 누나부트 준주의 주도인 이칼루이트를 경유해야 한다. 항공사는 퍼스트 에어만 운행하며, 하루 한 번꼴로 있다(현지기준 오전 9시15분 출발, 오후 5시 40분 도착).

폰드 인렛의 기후는 극툰드라에 해당한다. 1~2월 한낮 기온이 영하 38도에 이를 정도로 춥지만 6~8월에는 최고 6도 안팎까지 오른다. 단 계절에 관계없이 바람이 강해 체감 온도는 이보다 더 낮은 경우가 많다. 눈의 반사가 심해 선블록과 미러 선글라스가 필수다.

플로 에지 프로그램은 6~7월에 이뤄지며, 블랙 페더(www.blackfeather.com)를 포함해 누나부트 전문 여행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폰드 인렛 체류를 포함해 8~9일 일정으로 짜여지고, 생태관찰·스키·카약 등의 체험을 제공한다. 비용은 1인당 5995캐나다 달러(약 565만원) 수준이다(2014년 기준).

플로 에지(캐나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캐나다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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