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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례시안 놓고 각계20명 간담회|풍습·관행의 법적 규제는 생각해 볼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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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보사부가 마련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및 「가정의례준칙」 개정안 시안을 놓고 17일 20명의 각계 인사가 모여 찬반간담회를 가졌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전통적 풍습이나 관행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데 의견을 모으면서도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사치성 혼·장례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받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사부가 제시한 표준혼수품목 및 수량에 대해서는 마치 『매운탕엔 조미료를 무엇 무엇만 넣으라』는 식의 지나친 친절(?)로 실효성이 없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유정기씨(전충남대교수)와 유림을 대표한 이재서 성균관장은 가정의례법령의 존재마저 무의미한 것으로 지적했다.
다음은 유씨의 「예」와「법」에 관한 이론-.
사회적·도덕적 규범을 동양에서는 「예」라 하고 서양에서는 「법」이라 한다.「법」은 권리주장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금지조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동양의 「예」 는 의무와 실행을 근본으로 하는 만큼 금지조항이 필요 없는 것이다. 옛말에 혼례가 폐지되면 부부도가 없어져 음란한 사회가 되고 상례가 폐지되면 신하·자식의 은혜가 없어져 배은망덕한 사람이 나온다했다.
또 이씨는 「예」는 도덕의 일부이지 법률이 아니라고 말하고 관혼상제의 예는 후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더욱 후해야 하며 부모가 죽어굴건제복한 것이 「선」이지 결코 「악」은 아닌 만큼 이를 법에 마라 벌을 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인 한말숙씨는 『결혼식장을 아예 없애자』고 제의했다. 화환문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축복하고 싶고 진정으로 애도할 때 보내는 꽃은 반드시 필요하나 과시용 화환은 없애야 한다며 화환정면에『○○○』 『○○협회대표』등의 증여자 이름을 붙이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혼수 품목과 수량에 관해 『꼭 이렇게 하자한들 돈이 남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대로 지키겠느냐』며 『심지어 관에서 제시한 그 품목이나 수량마저도 못 채우는 사람은 얼마나 서럽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성저축생활중앙회장 현기순씨는 예식장의 좌석수를 30∼50개로 줄여 예식장이 붐비는 것을 막자고 했다. 개정안에는 축의금의 액수도 규제하고 국민학교 교과서에 건전의례에 관한 내용을 삽입, 어려서부터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의례업계를 대표한 유현규씨는 예식장에서 빌어 입는 신부 「드레스」가 2만∼6만원인데 명동같은 곳에선 최하 8만원에서 최고 50만원을 홋가하고 있으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값싼 예식장「드레스」를 이용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사치를 법으로 묶어 해결될수는 없다고 했다.
개정안이 답례품 증정을 허용한데 대해 유승삼 서울신문 논설위원과 현기순씨·장덕순 서울대교수는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유위원은 경험상 1천원미만의 찹쌀떡이나 「플래스틱」용기정도가 답례품인데 이 정도를 안 주었다해서 미풍양속을 해쳤다고는 볼수 없다고 했다. 또 혼수품목의 경우 보사부가 낸 표준형이 자칫하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되는구나』로 인식될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교수는 화환이 많이 들어오면 법에 규정된 2개만 진열하고 나머지는 안 보이는 뒤뜰에 놓으면 됐지 정성 들여 보내는 걸 어찌 처벌하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예식장을 없애는 대신 교회·사찰·새마을회관·학교운동장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매파(매파)를 규제하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제의했다.
이진섭 한국방송공사심의위원은 신문 부고를 2단 27행으로 규제했으나 집안식구가 많은 경우는 곤란하다고 했다. 화환·화분의 경우 상가에 조화하나 없는 것 만큼 쓸쓸하고 을씨년스런 것은 없다면서 조화의 경우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했다.
가정주부 이보혜씨는 결혼식이 끝나면 안내원을 따라 식장근처의 음식점으로 줄줄이 따라가는것도 쑥스러운 일이며 하객을 집에 초대할 경우 국수 한그릇만 간단히 제공하기도 불편한 일인만큼 답례품 증정은 찬성한다고 했다. 이씨는 표준혼수를 만들었는데 관에서 혼수를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알아낼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인천 새마을지도자 이윤환씨는 지방의 경우 답례품도 받고 나중에 집에 모여 음식도 먹는 예가 대부분이라며 아예 답례품은 없애고 집이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는 게 실질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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